[김하진의 영화 칼럼] 정치적 올바름과 영화

코로나 시기에서 힘겹게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테넷’은 꽤 충격적이었다. 시각적인 볼거리와 따라잡기 힘든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버스터 첩보물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007 시리즈의 팬이라고 한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테넷’은 스파이물의 전형적인 틀을 갖추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만들어진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초반, 주인공에게 인버전에 대해 설명해주는 바버라는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여성 연구원이다. 후에 주인공이 만나는 무기 사업가 프리야는 그가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는 관객의 편견을 깨트린다. 남편의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캣은 자신의 아들을 향한 모성과 자유의 갈망을 드러낸다. 주로 스파이물 영화에서 캣처럼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는 보기 힘들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백인-이성애자-남성 틀에서 벗어난 흑인 남성이다. 오히려 그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닐이 백인 남성이다. 차기 007 요원으로 흑인 배우, 여성 배우가 물망에 오르자 엄청난 반대 의사가 빗발친 적이 있었다. 그 점에서 보면 ‘테넷’은 굉장히 앞선 영화이다.

 

 

‘테넷’은 이전부터 계속되어오던 논쟁인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은 주로 언어나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움직임을 가리킨다(영화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쟁, 한송희, 이효민). 그 예로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인 용어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거나 문화생산물에서 소수자를 주연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있다. 이는 차별에 대한 시각이 다양화되고 관객들의 인식이 넓어지면서 등장하게 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테넷’은 이를 매우 자연스럽고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그려내었지만, 정치적 올바름은 오히려 관객들의 비난과 분노를 사기도 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란이 극심했던 영화로 인어공주 실사 영화와 ‘캡틴 마블’이 있다. 인어공주 실사 영화에서는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그녀가 하얀 얼굴에 빨간 머리인 원작의 에리얼과 조금도 닮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왜 백인 캐릭터를 굳이 흑인으로 바꾸었느냐, 이는 명백히 블랙 워싱이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다고 생색을 내고 비난하는 행동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원작이 있는 영화, 드라마라 해도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에 지나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마블이 처음으로 여성 히어로를 단독으로 내세운 영화 ‘캡틴 마블’은 개봉 전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았다. 페미니즘 영화라며, 주연 배우가 못생겼다며, 원작 캐릭터와 닮지 않았다며, 배우의 인성을 모욕하며 영화를 비난했다. 심지어 한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평점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개봉도 하지 않은 여성 영웅 영화에 대한 극도의 혐오는 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영화에 정치적 올바름 요소가 들어갔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을 상업적 목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내세우는 것 또한 잘못된 행위이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인정할만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기준이 정해져야 하며 영화사 등의 악용과 남용이 없어야 하고, 그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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