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민의 심리/사회 칼럼] 행복을 찾는 방법

우리 사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부를 잘해야지. 공부를 잘한다면 다음은 뭘까? 대부분 학생이 다음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야지. 그런 다음은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다음은 돈을 많이 모아서 결혼해야지. 결혼에서 끝이 아니다. 다음은 애를 낳고 키워야지.까지 소위 말하는 ‘행복’이라는 형태를 단계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행복이 보편적인 행복인 것처럼 듣고 자란다. 과연 이것은 정말 행복인 걸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행복(Happiness)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좋은 곳으로 가고 취직을 잘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등등을 계속 파고들고 파고들어 가보면 그 안에 궁극적으로 담긴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개인의 행복이라면 행복이라고 할 수는 있다. 이 과정이 행복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보고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행복이란 뭘까? 행복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거나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 내 미래에 대한 투자를 위한 길을 밟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행복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가 너무 괴로운데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괴로움마저 즐기며 넘어가는 것이 아닌 억지로 괴로움을 참고 계속해서 행복을 논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고, 현재에서 아무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채 계속해서 행복을 미래로 떠넘긴다면 ‘진정한 행복’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상황에서든 계속 미루어 버릴 테니까.

 

그렇기에 현재에서 행복을 찾고 미래의 행복으로 향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뜬금없이 행복을 찾는다고 하면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매우 간단하다. 행복이라고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행복 자체를 매우 커다란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범접할 수 없는 행복, 내일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행복 등 엄청난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행복 자체는 엄청나게 의미 있고 범접할 수 없을 정도 여야지만은 아니다. 한때 자주 사용되었던 단어 ‘소소한 확실한 행복’은 사실 행복 그 자체이다.

 

건강해서, 교우관계가 원만해서, 가정환경이 좋아서 뿐만 아니라 성취의 기쁨이 있어서, 방금 먹은 음식이 맛있어서 등의 소소해 보이는 행복들이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너무 익숙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일수도 있고 행복 자체를 너무 크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이러한 것들을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왜 행복을 크게 보게 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야망과 행복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둘을 완전히 구별하기에는 모호하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같지 않다. 행복이 좀 더 큰 의미이다. 야망은 행복 그 자체라고는 할 수 없다. 부정적인 일도 많지만, 일상 속에는 놓치고 있는 행복도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한 행복들을 놓치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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