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의 인문 칼럼] 권리를 실은 범퍼카

 

 

놀이 공원에 가서 ‘범퍼카’(bumper car)를 타 본 경험이 있는가? 최근 타 보진 않았더라도 어렸을 때 타 보았거나 지나가면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범퍼카는 차를 서로 부딪치면서 놀 수 있도록 만든 전기 자동차 놀이기구이다. 이 범퍼카를 탈 때면 차체가 불가피하게 서로 충돌하게 되는데, 필자는 범퍼카가 축소된 우리 사회의 모형이라고 생각한다. 범퍼카가 서로 부딪치는 것과 같이, 사회 속에서 우리의 권리도 서로 부딪히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권리의 충돌은 인간이 공동체 속에 살아가며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때 빈번히 일어난다. 이를 자신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의 위치를 타협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정적 기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권리 충돌이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 바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심화하는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용인 불가능한 사회의 관습에 의해 불공평한 권리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로 사회에 만연한 위계적 악습에 의해 강자의 권리가 약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집어삼키는 형태의 문제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양측 권리의 무게가 비슷해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없는 경우이다.

 

우선 첫 번째 경우의 사례에는 대표적으로 인종 차별에 관한 문제가 있다. 현재도 동양인 또는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과거의 상황이 현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울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1900년대 초 미국에는 흑인과 백인이 사용하는 화장실, 출입구, 버스 좌석, 음식점 등이 따로 나뉘어 있을 정도로 인종 차별이 심각했다. 흑인 차별을 반대하는 정부의 지침이 무색해질 정도로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한 상황이었다. 이때, 몽고메리에 살던 ‘로사 파크스’ 라는 한 흑인 여성이 백인 전용 좌석에 앉는 일이 발생했고, 승객들과 버스 기사의 말에도 그녀가 자리를 옮기지 않자 로사는 곧 경찰에 체포된다. 당시에는 한창 인권에 대한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고, 로사 파크스의 행동을 지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몽고메리에 살던 흑인들은 점차 출근길에서 버스를 타지 않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줄을 서 걸어가는 흑인들의 모습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후에 미국 법원이 버스 좌석에 대한 흑백 구분이 위헌이라고 선고하며, 미국의 흑인 차별은 조금 사그라들게 되었다. 이 경우는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버스 탑승이라는 상황 속에서 권리 충돌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사회의 관습에 의해 버스 좌석이 나뉘었기 때문이므로 백인의 권리가 흑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넘보는 권리 남용의 경우라고 해도 무방한 사례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경우의 사례는 오히려 과거보다 최근에 더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과거에 비해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의식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전자와 같은 극단적인 인권 충돌은 일어나지 않지만, 부가적인 권리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며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다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례에는 교사가 체벌을 통해 학생을 가르치는 효과를 극대화할 권리와 학생이 체벌을 받지 않을 권리의 충돌, 알 권리와 잊힐 권리의 충돌 등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중에서도 ‘서울 맹학교’에 관련한 사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시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학업을 위해 등교하는 서울 맹학교는 청와대와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있다. 그로 인해서 시위나 집회가 열릴 때 소음에 의한 피해를 많이 입는데, 물론 그 근처의 주민들도 같은 고충을 겪고 있겠지만 특히나 맹학교의 학생들은 특성상 소리나 진동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맹학교 측은 수업 시간에는 확성기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제출하였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2 필자는 이 사례야말로 대표적인 우리 사회의 권리 충돌 사례라고 생각하는데, 시위자들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헌법 제 21조 1항-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맹학교 학생들의 교육의 자유도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 26조 1항-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물론 새로운 지식을 함양하는 교육과 또 다른 권리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집회 간의 귀천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고 개인마다 그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교육은 인생에 필수적이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학생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맹학교 학생들의 수업 시간을 위해 집회에 대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집회하는 것에 대한 시기적 제한보다는 맹학교 학생들이 학생 시기에 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기적 제한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범퍼카에 탑승하다가 간혹 즐거움을 위한 충돌에도 다분히 의도적이거나 과한 충돌을 경험하면 불쾌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권리의 충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서로 충돌하고 이해하며 타협해가는 것은 권리 충돌의 순기능이지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행위는 양측 모두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와 자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범퍼카를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로자 파크스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1955년)' 항목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70725&cid=62123&categoryId=62123

2.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맹학교' 항목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84211&cid=40942&categoryId=3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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