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현의 의료/심리 칼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에게 죽음이란 필연적인 것이다. 가난했던, 부자이던, 갓 태어났건 100세가 넘었던 죽음이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탄생과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죽음은 각 나라의 사상과 풍습에 따라 천차만별으로 해석되는데,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장례 풍습이다. 죽음이란 새로운 시작이라고 여기며 축제같은 분위기로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장례 방식이 있는가 하면, 효를 중요시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매년 기일에 엄숙한 분위기로 제사를 치르는 장례 방식도 있다. 이런 다양한 장례 풍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고대 이집트인은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하여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주검이 썩지 않도록 미라상태로 만들어 죽음 뒤의 세상까지 신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믿었고 여러 신을 숭배하기도 했다. 이집트 문명은 세계4대 문명 중 하나로 기원전 3000년전부터 시작한다. 동양의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불교 교리가 있다. 이는 윤회설을 강조하는 것이며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이다. (참고: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2019년 11월~2021년 11월 전시)

 

중국의 장례 방식에는 ‘현관’이라는 것이 있다. 절벽 사이에 나무 관을 매달아 놓는 ‘현관’은 관을 높고 험준한 절벽에 올릴수록 죽은 자를 존경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중국 야오족은 마을 사람이 죽으면 전통악단이 음악이 연주하고, 마을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장례식을 진행한다. 잔치처럼 장례를 치르면 망자가 더욱 행복해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또한, 필리핀의 본톡 지역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시신을 10일 정도 의자에 앉힌 후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시신의 혀가 축 늘어지고,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부패되기 시작하면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나지만, 냄새가 고약하면 고약할수록 후손에게 더 좋다고 믿었다고 한다. 각 지역에 따라 다른 사상과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중해 주어야 하는 문화 중 하나이지만, 필리핀 본톡 지역의 이러한 장례 문화에는 위생상의 문제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장례 문화들을 알아보자. 베트남 강가에는 물가에 자리잡은 묘들이 많다고 하는데, 조상님들을 시원한 물가 근처에 모시기 위해 묘지를 강가에 안치시킨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양지바른 곳에 묘를 안치시키는데, 효를 중시하는 문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파키스탄의 칼라쉬족은 풍장을 하는데, 풍장이란 뚜껑 없는 관에 시신을 눕힌 후 자연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을 의미한다.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비바람에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하는 풍습에는 바람과 함께 태초의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풍장은 아시아의 소수민족과 인디언들에게 볼 수 있는 장례 풍습이라고 한다.

 

고대 문명 도시 쿠엘랍에 거주했던 페루의 차차포야족은 죽은 사람을 성벽의 내부 공간에 보관했다고 한다. 성 벽 속의 영혼들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나의 장례 풍습은 장례가 고인을 더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파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고인의 시신을 밝고 화려한 관에 넣는다고 한다. 관 모양은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 모양으로 제작한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과 함께 마지막을 꾸미는 모습이 망자를 누구보다 생각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각 나라의 장례 풍습은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 소개한 풍습들뿐만이 아니라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등의 더 많은 죽음에 관련된 장례 풍습이 있다. 또한, 각 나라의 문화, 사상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예전, 죽음을 다룬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자꾸 회피하려고만 하고 말하기 꺼려하는데,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죽음은 한 인간으로써 더 나은 삶을 계획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한 문화권 안에서도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계없이 죽음은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꼭 생각하고 대비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죽음에 대해 무섭고 무조건 맞이하기 싫은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가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더 나은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라며 축복을 내리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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