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지윤의 시사 칼럼] 대체복무는 또 하나의 병역의무

내가 어릴 때 가졌던 습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내 주장이 뚜렷한 가운데 상대방이 "근데, 내 생각은 좀 다른데?"라는 말이 시작된 순간, 내 머리는 아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이 사람의 의견은 다 듣지도 않은 채 "아니야 내 말이 맞아."라며 반박할 거리를 찾는 습관이 있었다. 이제는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지만 어렸을 땐 그게 너무 어려웠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통 자기 생각에 반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적으로는 비판적이다. 내가 이제부터 쓸 말은 간단히 대체복무 찬성이 아닌 우리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품성을 갖고 있다. 그 누구도 품성이 같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품성에 따라서 개인의 고유한 성격, 개성, 심리상태, 정체성 등을 나타낸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행한 『윤리와 사상』에 나오는 지문이다. 이처럼 모든 국민은 개인의 품성을 가지고 있으며 양심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입영 기피로 분류되어 수형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은 매번 충돌하기 마련인데 이 또한 비슷하다고 보인다.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떨까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나의 시선은 어떠한가?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주일에도 몇 번씩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일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무조건 긍적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의 충돌에서 타협안인 대체복무제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 안 되는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  내 틀에 갇혀 그 외의 것은 옳지 못하다는 전제는 빠르고 다양해져 가는 사회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에 군 복무가 중요한 사회적 책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가 다차원화 되고 개인의 정체성이 나날이 인정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의 잣대로만 군 복무를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순히 군 생활을 기피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 대체 복무 기간을 늘리고 무기를 사용하지 않지만, 신체활동을 수반한 기피 시설 등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여러 보완책이 필요하다.

 

만약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대체 복무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병역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수형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젊은 청년들의 노동력과 귀중한 시간을 100% 활용하지 못한다. 이들은 종교적 가치가 이미 사회적 가치보다 크기 때문에 기어이 수형생활을 하는 청년들이다. 이들의 노동력을 감옥에서 1년~2년씩 수감하면서 그대로 두는 것은 군사력의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를 하는 것은 국가안보라는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면서 동시에 병역 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1인용: http://m.khan.co.kr/amp/view.html?art_id=20070508091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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