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학생들에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 얼간이(2009): 모두가 1등이 되는 레이스를 만들기 위해서

 

 

 

 

 

글을 읽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글쓴이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엄청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인식하고 있었을 뿐, 자신 나름의 해답은 찾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을 통해서 소개할 영화를 본 후 글쓴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영화 '세 얼간이'이다.

 

'세 얼간이'는 전형적인 인도의 발리우드 구성을 그대로 뒤따른다. 흥겹고 중독성 있는 노래, 2~3시간 사이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를 물 흐르듯이 진행하는 자연스러운 구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매해 어마어마한 양의 영화가 제작되는 인도의 발리우드, 미국의 할리우드에서도 '세 얼간이'처럼 국가의 교육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이러한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 영화는 있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 외에도 영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 'SKY캐슬'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치열한 교육 실태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 얼간이'와 앞에서 논한 작품들의 차이점은 특유의 풍자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2~3시간 동안 유쾌함과 슬픔, 분노, 감동과 같은 감정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깊이 있고 무겁게 다룬다.

 

영화는 크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과거의 경우 란초, 파르한, 라주, 3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도 임페리얼 공과 대학교 (실제 인도의 인도 공과 대학교의 모티브라고 한다.)입학한 그들은 파르한과 라주는 전형적인 암기식 교육과 성과를 내기 위한 공부에 익숙해져 있던 반면에 란초는 실제로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셋은 공부에 대한 생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친해지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파르한과 라주는 란초의 뜻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의 총장 비루(애칭이 바이러스이다.) 와 대립하게 된다.

 

현재의 경우에는 학교 졸업 후 사라진 란초를 찾기 위해서 파르한과 라주가 그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현재를 배경으로 전개될 때는 다소 이야기가 가벼워지고, 동시에 영화 중간중간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는 파트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란초의 정체에 대한 반전을 극적으로 다뤄냈다는 점에서도 관객에게 큰 충격과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이 계속 보인다. 란초 일행의 친구인 조이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한 장면과 더불어서 암기식 교육과 성과를 내기 위한 공부의 최대 수혜자로 그려지는 차투르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비루 총장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비루 총장은 본인의 아들에게도 '자신의 길' 즉 물리학자가 되라고 강요했다가 아들을 자살의 길로 이끌었으며, 많은 학생에게 경쟁과 목적 없는 공부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의 도움으로 태어난 자신의 손자를 보고는 "발차기하는 모습을 보니 축구선수가 되겠구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하는 장면은 영화가 주는 최고의 감동이자 교육이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상징한다. 또한 영화 초반에 란초가 비루 총장에게 우주에서 사용하는 펜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질문의 답을 통해서 란초를 인정하는 장면 역시 큰 여운을 남긴다.

 

다만 란초의 활약이 그의 뛰어난 재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특유의 현실적이고 무거운 느낌을 100% 전달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란초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력을 통해서 결과를 이루어냈기에 충분히 많은 사람을 공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란초와 같은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영화에서 특별히 제약을 걸거나, 비판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영화에서도 해석은 각자의 몫이라고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세 얼간이'는 제목과는 다르게 똑똑한 학생들이 제목처럼 단순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치열한 교육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보낸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살아가는 태도는 현실의 학생들에게 있어서 매우 간단하지만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대사 중에 '우리는 늘 인생은 레이스라고 배워왔다.'라는 대사가 있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본다면 조금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인생 자체가 레이스인 것은 맞을지 몰라도, 패자 역시 1등인 그런 레이스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세 얼간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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