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서의 사회 칼럼] '국민 프로듀서'의 실체: 주체적인 대중은 한낱 꿈에 불과했을까

 

2017년 여름, 막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끝난 시점이었다. 전 시즌보다 더한 열기와 함께, 시즌을 통해 탄생한 그룹 ‘워너원’과 다른 연습생들에게 수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에 대한 인기와 더불어 화제를 낳았던 것은 주체적인 ‘팬덤’이었다.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동안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팬들은 방송에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들의 요구가 방송 및 관련 활동, 상품 생산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소비자가 더 이상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르지 않으며, 생산자의 역할도 하게 된다’며 이들을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프로슈머(prosumer)라고 불렀다.

 

나도 그에 대해 기대를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 같은 경우, 팬들은 참가자들에게 ‘양육 감정’을 느끼고 그들을 위한 마케팅, 영상 콘텐츠 제작, 굿즈 제작 등의 활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팬덤의 목소리는 기업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팬덤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며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모습이, 소비자가 주체성을 획득하고 능동적으로 변화해간다는 증거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프로듀스’ 4번째 시즌인 ‘프로듀스 X’가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최종 순위가 조작되어, 실제로 많은 표를 획득한 연습생은 떨어지고, 반대로 데뷔 조에 없어야 했지만 투표 수 조작으로 데뷔한 연습생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 시즌들에 대한 조작 논란도 계속되었다. 대중들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데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며, 직접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다는 주인 의식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조작 논란은 ‘대중의 의견 그대로, 대중이 원하는 대로’ 아이돌을 뽑는다는, 즉 대중을 의사 결정자의 일부로서 인정한다는 제작 의도는 그저 그럴듯한 겉모습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이는 우리가 ‘주체적인 대중’의 모습이라 여겼던 것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대중은 프로그램 제작자의 편집으로 만들어진 참가자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싫어했고, 제작자가 강조한 순간에 집중했으며, 방송에서 자주 비추는 참가자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주체적인 대중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콘텐츠를 생산하고 연습생을 응원해달라는 자체적인 마케팅을 시행하는 것이, 결국 생산자의 의도대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고 수익을 늘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려는 제작자의 거대한 게임의 일부로서 움직였던 것이 아닐까?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 것은 맞다. 대중의 지위가 향상된 것도 맞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겪으면서, 대중은 과연 진정으로 대중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대중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소비자가, 힘 있는 생산자만큼의 위치에서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일까?

 

철학자이자 음악가인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대중의 주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문화 산업은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지만, 대중들로 하여금 능동적, 비판적인 태도를 잃게 만든다. 문화 산업에서 대중은 표준화된 소비 양식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대중문화는 자본과 문화가 결합한 형태인데, 경제적 효용성에 의해 문화가 결정되는 한 개인의 주체성은 사라지는 것이다.1

 

문화 산업은 소비자의 모든 욕구가 실현될 수 있는 것처럼 제시하지만 그 욕구들은 문화 산업에 의해 사전에 결정된 것이다. 소비자는 자신을 영원한 소비자로서, 즉 문화 산업의 객체로서 느끼게 되는 것이 체계의 원리이다.2

 

물론 아도르노가 이 주장을 펼쳤던 시기보다 대중문화는 다양해졌고, 대중도 ‘통제당하는 수동적 존재’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대한 욕구가 문화 산업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여전히 부정하기 어렵다. 생산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하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중의 수동적인 특성이 여전히 대중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이번 논란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중문화, 특히 팬덤과 관계된 대중문화에서 대중은 이전보다는 향상된 지위를 가지지만, ‘주체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의 논란으로 볼 때, 대중은 진정한 주체성을 가졌다기보다는 문화 산업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면서 ‘내가 결정한 대로 나의 욕구를 실현한다’라고 착각하는 듯 보인다.

 

대중은 문화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순간에도, 향유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대중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이것을 정말 원하는 것인지, 산업에 의해 부풀려진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문화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향유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지금 대중의 모습을 ‘주체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화산업에 휘둘리기만 하는 객체가 아니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문화 속의 대중으로서, 소비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먼저 생각하고 반성할 때, 문화의 주체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테오도어_아도르노
2.인용: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938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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