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보고,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의 '보이지 않는 손'을 붙잡고 있는 우리

 

"하나님이 그들(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명하셨다. 인간의 탐욕이 너무 지나쳤던 탓일까, 인간은 지구를 망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인간 중심주의가 확산되고, 여느 생명체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은 마치 세상의 왕인 양 군림하고 있다. 그들의 편익을 위해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하고, 생명을 해쳤다.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인가?

 

「혹성탈출」에서 넘버 9(유인원)은 인간들에게 불법 포획된다. 비참하고 거북한 일이다. 무언가를 '연구'한다는 것은 전문적이고 멋있는 일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야만적인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다. 넘버 9은 알츠하이머 치료 약을 개발하는 연구에 사용된다. 자신의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개발하면서, 유인원들의 생명은 마음대로 이용하는 연구원. 연구원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작품 속에서 그다지 긍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넘버 9은 치료 약을 주입받고 똑똑해지지만,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인간들은 그녀를 죽인다. 나아가 실험에 이용됐던 모든 유인원들이 살생 처분된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가치관이 낳은 비극적인 결말이다.

 

연구원은 넘버 9의 새끼에게 '시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키운다. 시저는 똑똑했다. 어미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약효가 그 자손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어쩌면 몇몇 이들은 '넘버 9의 새끼가 똑똑해졌으니 결론적으로는 유인원에게 좋은 일을 해준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저는 똑똑해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욕심이 낳은 과오일 뿐이다. 만약 다른 기형 형질이 유전되었다면 어땠겠는가? 비참한 결과를 야기했을 것이다. 인간들은 합리화를 멈춰야 한다. 토끼의 눈에 마스카라 화장품 실험을 하고도 예쁘게 해줬다고 뿌듯해 할 것인가? 필자는 '스노우볼'이라는 이름의 토끼를 키운다. 우리 스노우볼에게 그런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시저는 진화했다. 자신을 키워준 인간을 보호하고자 다른 인간을 해치게 된 시저는 침팬지 수용소에 갇힌다. 거기서 시저는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한다. 시저가 태어난 연구소를 공격해 침팬지들은 구해내고, 동물원에 갇힌 침팬지들까지 빼낸다. 시저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곳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시저는 인간의 말까지 할 줄 알았다. 아직도 시저의 똑똑함이 기대되고 신기한가? 언제 인간을 공격할지, 얼마나 더 진화할지 두렵지 않은가? 후회된다고 느낀다면 이미 늦었다. 영화 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과오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간의 무분별한 실험은 비약을 야기한다.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전체 질병의 1.16%밖에 되지 않는데도 동물 실험이 약의 안정성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처럼 오판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이유가 고작 1%의 희망 때문인가? 지나치다. 인간의 이기심과 헛된 판단력이 비극을 초래했다. 현대 기술력은 완벽하지 못하다. 게다가 무고한 생명 또한 희생시킨다. 왜 인간들은 생명을 이리 가볍게 여기는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때문에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그 존재 자체가 지구의 자정능력을 흐리고 있다. 자정 능력은 경제학 용어인 '보이지 않는 손'과 매우 비슷하다. 인간이 그 손을 붙잡고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인간은 욕심을 놓아야 한다. 물론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 일부 개발과 이용은 필요하다. 다만 과도한 '파괴'를 막자는 것이다. 우리가 대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을 바라볼 것을 권면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창조된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의 생명이 소중하듯, 동물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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