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재의 스포츠 전술 칼럼] 라볼피아나란 무엇인가



현대 축구의 감독들은 후방 빌드업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볼을 오래 점유하면서 볼을 앞선으로 전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해결책이 제시되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후방 빌드업의 교본이라고 봐도 되는 라볼피아나(La Salida lavolpiana)라는 개념이다.

 

 

라볼피아나란 무엇인가?

 

영어로 포켓 플레이(pocket play)라고 불리는 라볼피아나는 아르헨티나의 감독 리카르도 라 볼페(Ricardo La Volpe)의 이름을 형용사화한 표현으로 라 볼페의 출구 전략, 즉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분 전술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변형 백3를 활용한 후방 빌드업은 라 볼페가 처음 창안하였으나, 이러한 전술이 유럽으로 전파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펩은 이러한 라볼피아나에 관한 전술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당시 바르셀로나 센터백이었던 라파엘 마르케스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를 체계화시킨 뒤로 후방 빌드업 방식 중 하나의 교본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라볼피아나를 이야기할 때, 백4 형태를 활용하는 팀이 후방 빌드업 전개 시 양 센터백이 좌우로 넓게 벌려서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그 사이로 내려가 변형 백3를 형성하고 양 풀백을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려 높은 위치에 있는 풀백에게 볼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라볼피아나의 의도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공격 팀이 볼을 오래 점유하고 상대 수비 조직에 균열을 내기 위한 방식 중 하나다.

라볼피아나의 의도는 크게 3가지다. 1) 백3를 형성함으로써 수적 우위를 가지고 센터백이 볼을 다룰 수 있는 공간 확보하는 것과 2) 상대의 수비 간격을 벌려 하프 스페이스에서의 공간의 깊이 확보, 3) 좌우 스토퍼가 측면 공간을 커버하여 백3 혹은 윙백이 내려선 백5를 형성하여 수비에 안정성을 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볼피아나 전개 방식

 

1. 골키퍼부터 시작하는 롱패스 전개

상대가 높은 위치에서 4-3-3 포메이션으로 수비를 시작할 때, GK가 볼을 잡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파란 팀의 3FW가 빨간 팀의 3CB을 1vs1로 마킹하고 있는 상황이고, 빨간 팀의 두 명의 중앙 MF에게 대인 마크를 함으로써 빨간색 팀은 전진으로 중앙 쪽으로의 전개가 막혀버린 상황이다.

 

이때, 롱패스 능력을 갖춘 골키퍼를 보유하고 있는 팀이라면 백3 형성을 통해 높은 위치까지 전진한 윙백에게 롱패스를 전달하면, 쉽게 볼을 앞선으로 전진시키는 게 가능하다.

 

백3의 형성에 따라 양 윙백이 높은 위치까지 전진한 상황이라면, 상대 팀 선수의 마킹을 받지 않고 자유로워진 풀백이 볼을 받고 롱패스를 통해 공격이 가능하다.

 

 

2. 수비형 미드필더가 자유로워질 경우

 

상대가 4-4-2 대형을 형성하여 수비를 시작할 때, 5번이 내려와 백3를 형성한 상황이라면 3vs2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로써 백3와 그 앞에 배치된 두 중앙 MF는 각각 3개의 패스 옵션을 가질 수 있고 이에 따라 볼을 전진시키는 것이 수월해진다.

 

만약, 2FW가 3CB 중 볼 소유자에게 마킹을 시도한다면 1) 수비 팀의 선수 간 간격이 벌어짐에 따라 앞선에 있는 두 중앙 MF에게 패스를 전개하거나 2) 좌우 스토퍼에게 볼을 전개해 측면 혹은 중앙으로 볼을 전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라볼피아나의 단점

 

라볼피아나가 이러한 2가지의 방식을 통해 볼을 앞선으로 전진시킬 수 있다고 해도 100%의 확률로 볼을 전진시킬 수 있는 것 또한 아니고,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부분 전술은 아니다. 그렇다면 라볼피아나의 단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1. 높은 전술 이해도와 조직적인 움직임이 요구됨

 

라볼피아나라는 전술이 강팀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빌드업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뿐만아니라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전술 이해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상대가 백3에 대한 압박을 포기하고 완전히 내려앉았을 때, 1,2선 자원들의 스위칭 혹은 침투, 유기적인 포지셔닝이 아예 없다면 어떻게 될까?

 

 

조금은 극단적일 수 있는 예시를 들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위와 같이 빨간 팀이 백3를 형성하여 좌측 스토퍼가 볼을 잡았을 때, 상대가 4-4-2 대형을 형성하여 2FW가 3CB에 대한 강한 압박을 포기하고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공간을 막는 것에 초점을 둔다고 가정을 해보자.

 

빨간 팀의 4번은 압박에서 자유로우나, 파란 팀의 2FW가 두 중앙 MF를 마킹하여 중앙으로의 패스 옵션을 잃었기 때문에 크게 2가지의 옵션을 갖는다. 1) 3vs2 수적 우위를 활용하여 직접 볼을 몰고 전진하거나 2) 상대의 MF 라인 뒤에서 볼을 잡을 수 있는 윙백에게 볼을 전개하거나이다.

 

이때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게 되면 파란 팀, 즉 수비 팀의 측면 MF가 빠르게 반응해서 상대 윙백(3번)을 압박하게 되고 이때 윙백이 드리블 능력이 워낙 뛰어난 경우가 아닌 이상 막혀버리기 때문에 백패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수비 조직에 균열을 낼 수 있는 1선 혹은 2선 자원들의 오프 더 볼 움직임이 전혀 없다면, 흔히 위험 지역이라고 말하는 2선과 3선 사이 지역으로의 볼 투입이 어려워지고 오히려 의미 없는 볼 점유만 반복하게 된다.

 

2) 빌드업 능력이 탁월한 수비진과 골키퍼 필요

 

낮은 위치에서 볼 소유권을 잃을 경우 그에 따른 리스크 또한 높고, 이에 따라 빌드업 능력이 탁월한 수비진과 골키퍼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높은 지역에서 압박을 가했을 때 이러한 압박을 풀어 나올 수 없는 선수가 없다면 낮은 위치에서 볼을 뺏기게 되고 낮은 위치에서 볼
을 뺏긴다는 건, 상대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했을 때 우리 팀 골대와의 거리가 상당히 짧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볼피아나의 의도는 낮은 위치까지 상대 수비수들을 유인하여 공간을 만들어내는데에 있지만, 만약 낮은 위치에서 볼 소유권을 잃게 된다면 무의미해진다.

 

 

라볼피아나의 변형

 

라볼피아나에 대응하기 위해선 수비 팀이 앞선에서 2CB과 CDM을 제어해야한다. 이를 위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2FW의 움직임을 통해 3vs2라는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도 수비를 해내는 것이 가능했다. 수비 팀이 4-4-2 포메이션으로 수비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공격 팀의 라볼피아나에 대응하기 위해 상대가 한 명의 FW가 볼 소유자를, 나머지 한 명의 FW가 6번(CDM)롤을 맡은 선수를 번갈아가면서 압박하게 되면 2CB과 한 명의 중앙 MF를 동시에 수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1) 중앙 미드필더가 측면으로 내려오는 방식 feat. 투헬

 

투헬은 이러한 수비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적인 라볼피아나의 개념과 다르게, 8번이 측면으로 내려오는 방식을 생각해냈다. 빨간 팀의 8번은 자신의 마크맨인 중앙 MF가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직접적으로 잡아내지 않으면 자유로운 상태기 때문에 상대 2FW 혹은 중앙 MF의 견제를 받지 않고 볼을 받으러 내려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비 팀은 크게 2가지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다. 1) 측면 MF가 압박하지 않고 백3의 우측 스토퍼(8번)의 전진을 허용하거나 2) 변형 백3의 우측 스토퍼 자리에 내려온 빨간 팀의 8번을 견제하기 위해서 볼에서 가장 가까운 측면 MF의 전진을 통해 압박해야만 한다.

 

만약 측면 MF가 대형을 유지하게 되면 자연스레 수비 라인을 전진시키는 게 가능해지고 측면 MF가 자신의 마크맨(빨간 팀의 2번)을 버리고 자신을 압박하게 되면 측면에 위치한 노마크 상태인 윙백에게 볼을 전개함으로써 볼을 앞선으로 전개할 수 있게 된다.

 

 

혹은, 파란 팀의 왼쪽 중앙 MF가 자신을 압박하러 올라오게 되면 자연스레 수비 팀의 선수 간/라인 간 간격이 벌어짐에 따라 빨간 팀의 8번(중앙 MF)가 중앙으로의 패스 옵션을 확보하게 된다. 파란 팀의 중앙 MF가 마크맨을 따라가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라볼피아나의 의도 중 하나인 깊은 지역으로의 압박 유도에 성공하게 된다.

 

파란 팀의 중앙 MF 한 명, 내지는 상대 윙어까지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면 10번(왼쪽 중앙 MF)이 사이드로 빠져 볼을 받아주면 상대의 마크맨을 측면으로 끌고 나와 중앙에 공간이 발생하게 된다. 이 공간으로 6번이 움직임에 따라 볼을 받고 앞선으로 볼을 전개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공격진은 상대 백4라인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에도 파훼법은 존재하는데, 그는 다음과 같다. LM가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상대 8번을 마크하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에 당연히 공백이 발생한다. 4 LB이 메꿔주어 측면으로의 전개를 차단함과 동시에, 후방에선 백3를 형성하여 상대 공격수를 1vs1로 마킹한다.

 

그렇다면, 빈 왼쪽 측면 공간을 커버하지 못하게끔 상대 백4 라인을 묶어둘 필요가 있고 이것이 이루어져야 중앙 MF를 활용한 라볼피아나를 했을 때 생긴 빈 측면 공간을 활용하여 공격 전개가 가능해진다.

 

첫 번째론 윙어가 *더미 런을 통해 상대 백4 라인에게 뒷공간에 대한 부담을 주는 것이다. 더미 런을 반복적으로 시도하게 되면 백4 라인은 뒷공간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수비 라인이 내려가거나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도움 수비를 하러 높은 지역까지 올라가기 쉽지 않다.

 

*더미 런(Dummy Run) : 상대를 속이는 행위로, 축구에서는 상대 수비를 유인하기 위해 공격하는 척 움직임을 가져가거나 상대 수비를 아래로 끌어내려 빈 공간을 창출하는 행위다. 

 

 

 

두 번째로는 양 윙어가 풀백을 묶어버리는 것이다.  *pinning을 활용해 상대 풀백을 측면에 고정시키면서 상대의 수비 간격을 벌림과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양자택일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풀백이 커버를 하기 위해 높은 위치까지 올라올 수 없고 윙어 뒤로 공간이 발생하기 때문에 빌드업하는데 있어 편해진다.

 

*pinning : 'pin'의 뜻을 알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pin'은 어떤 물체를 '묶거나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다. 축구에 적용하면 똑같다. 공격 상황에서 상대를 일정 지역에 '묶거나 고정시켜' 빈 공간을 창출해내고 상대 수비가 빈 공간을 커버링할 수 없게끔 하는 부분 전술 중 하나다. 

 

축구의 전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약 150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축구 전술사의 역사는 경기에서 골을 넣고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감독들에 의해 쓰이고 있다.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내고 모방해나가는 축구 감독들의 전쟁은 게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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