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학교폭력의 기회비용

 

 

최근 뉴스에 자주 거론되는 화제는 '학교폭력 미투'이다. 여자 배구팀의 한 쌍둥이 자매가 중학교 시절에 저지른 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둘은 결국 사실을 시인했다. 이후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무기한 박탈과 함께 체육계에서는 앞으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여러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체육계뿐만 아닌 연예계까지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으며, 어떤 이는 단순히 연예계까지가 아닌 공무직 종사자들의 처벌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처벌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학교폭력 자체에 대해 공소시효가 5년에서 10년으로 짧은 편인 것에 더해서 만 10세에서 14세 사이는 폭력이 있었더라도 소년법에 의해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교폭력의 사례는 문학 작품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스미노 요루' 작가의 '밤의 괴물'이 있다. 여러분이 익히 들어본 적이 있을 전자의 작품은 국민학교(과거 초등학교의 명칭으로, 일제의 잔재이다.)의 한 반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한병태'를 통해 이야기한다. '엄석대'라는 인물의 주도로 반이 통제되는 모습은 실로 독재자의 '왕국'을 보여준다. 후자의 작품은 마찬가지로 중학교 반 안에서 벌어지는 '야노 사쓰키'에 대한 일상적인 학교폭력의 모습을 드러낸다. 반 아이들은 '야노'를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갈취, 폭력, 험담, 무시 등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의 양상이 두 작품 모두에서 등장한다. 읽는 이의 눈을 찌푸리게 할, 그러한 폭력의 현장이 말이다.

 

 

 

 

 

 

 

 

 

 

 

 

 

 

 

 

 

 

 

사회 경제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개인이 정한 선택에 대하여 포기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가치가 큰 것을 의미한다. 선택은 '폭력에 가담한다.'와 '폭력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행동으로 제한한 뒤, 한쪽을 선택했을 때 다른 한쪽이 기회비용이 된다고 약속하고 이 개념을 학교폭력에 대입 시켜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작품의 두 주인공 '한병태'와 '아다치'는 각자의 학급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목도하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비용은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서 가해자나 방관자의 태도에 대한 양심의 기회비용과 어떠한 피해가 돌아오더라도 불의에 맞서는 태도에 대한 양심의 기회비용 사이에서, 두 주인공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이를 타개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돌연 '엄석대'의 총애를 받고 권력에 굴복한다. 반면 '아다치'는 반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야노'를 무시하고 폭력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마지막에 '괴물'의 모습일 때의 '밤'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아침'에 '야노'와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한병태'는 '엄석대'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만일 폭력에 순종할 때 얻었을 비용)을 높게 보았고, '아다치'는 반 전체의 폭력에 가담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만일 폭력에 저항할 때 얻었을 비용)을 높게 보았기 때문에 선택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다소 어려웠던 경제 이야기와는 안녕을 고하고 다시 '학교폭력' 자체로 돌아와 보자. 필자는 항상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면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바로잡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 학교생활을 통틀어 돌이켜 볼 때, 그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 뜻하지 않게 상처를 받고, 뜻하지 않게 다른 이의 상처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일이 어렴풋이 떠오르면서 그러한 기억이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에 반감이 들었다. 당연히 잘못된 것, 무엇보다 폭력은 항상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 해결의 최적기는 폭력이 발생한 바로 그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벌은 어려워지고 단순히 '과거의 일'로 잊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일어난 사소한 폭력이라 하더라도, 제때 주의를 기울여 신속하게 처리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학교폭력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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