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의 독서 칼럼]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천 개의 파랑’은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거머쥔 SF 소설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SF’라고 정의하기에는 책이 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사회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사회에 적응하느라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작가가 말하길, 이 소설은 하나의 문구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야기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정확히 말하면,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말 ‘투데이’도 등장한다.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의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배경은 2035년으로, 휴머노이드가 경마에 사용되며 경주마들이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된 미래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투데이’라는 말과 한 팀이다. 콜리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칩이 잘못 삽입되어 다른 휴머노이드 기수와는 조금 다르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엉뚱하지만 마음을 건드는 질문을 쉼 없이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리는 스스로 주로 위에서 낙마한다. 너무나 빠른 속도를 강요받은 투데이의 다리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콜리는 투데이가 자신을 태우고 완주했다가는 영영 다리를 잃을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자신의 파트너인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낙마했고, 하반신이 망가진 휴머노이드 기수는 폐기될 위험에 놓였다.

 

그 이후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연재’라는 소녀가 콜리를 구해내고 둘은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어 안락사 위험에 처한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친다. 그 도전에는 연재의 친언니 ‘은혜’와 연재의 친구 ‘지수’ 등 많은 인물들이 함께한다. 결국 이들은 투데이가 안락사되는 것을 막고 마지막으로 주로에서 콜리와 호흡을 맞출 수 있게 한다.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투데이와 콜리는 가장 천천히, 느리게 달리는 연습을 한다. 결국 이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사람들은 시야를 가리고 빠르게 질주해야만 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아간다. 첫 문단에서 말했듯이, 그 속도로부터 버림받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그러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할 3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첫 번째, 우리는 장애인들을 제대로 배려하고 있는가? 지나가다가 휠체어를 허락도 없이 붙잡아 도와주거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동정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들어주고 있는가? 이 책의 주인공 은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은혜에게 세상은 너무 위험천만하고 불편하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은혜가 말하는 다수에 나도 포함되어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미래에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발전한 기술은 여전히 다수를 위해서만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장애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수에 속했던 사람도 언제든 소수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내 일이 되었을 때, 그제서야 불편함을 토로할 것인가?

 

두 번째, 세상은 너무나 인간 중심이다. 동물들의 생존권은 중요하지 않을까? 작가는 인간의 모순된 생각과 행동을 제대로 지적한다. 모두가 겉으로는 동물을 위하는 척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개 공장에서 태어나 펫숍에 팔려 온 강아지를 구매하고 노견은 못생겼다고 생각하여 갓 태어난 강아지만을 찾는 것. 그러한 행동들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어릴 때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고 지나가다 펫숍을 발견하면 작은 상자 속 강아지를 보고 좋아했다.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참 아무것도 몰랐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와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 더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반려동물을 온전히 책임지고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수의사 복희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놀랐다. 그녀는 한 생명을 전부 책임질 용기가 없는 자신을 겁쟁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겁쟁이인 것 같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던 어릴 때보다는 성장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 대해 가졌던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선호도에 따라 동물들이 쉽게 죽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세 번째, 만약 멀지 않은 미래에 로봇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을까? 이 문제는 앞의 문제보다 더 어렵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에 왜 벌써부터 걱정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당연히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콜리와 같이 다정한 휴머노이드는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소설 속 콜리가 너무 인간 같아서 마음이 가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이라고 해서 인간의 만족을 위해 멋대로 생산하고 쉽게 폐기해도 되는 걸까? 로봇이 생활화된 미래가 오기 전에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칼럼을 다 쓰고 보니 질문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질문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천 개의 파랑’도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책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책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살아 움직인다. 각각의 인물들에 공감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 보자.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속에 퍼지는 감동의 물결에 발걸음이 느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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