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의 독서 칼럼] 뉴미디어 홍수 시대, 범람하는 혐오표현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나?

독자들은 ‘코로나 레드’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시사용어는 코로나 19로 생겨난 우울감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를 넘어선 상태로, 장기화 되는 감염병 상황에서 촉발한 우울함이나 불안 등의 감정이 분노로 폭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용: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118852&cid=43667&categoryId=43667) 바이러스로 인해 고조된 개인의 불안과 공포의 심리가 사회에 대한 격분과 혐오의 감정으로 변질한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노 마스크 시비 사건을 비롯하여 확진자를 가해자로 비난하는 시선들, 경기 침체로 인한 가정 내 불화 급증 현상 모두 분노가 불러온 재앙이다. 이렇듯 혐오와 폭력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초연결 네트워크 사회인 오늘날, 위와 같은 분노심리가 대중매체를 통한 온라인 차별 표현으로 가시화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한 폐렴, 대구 코로나 등 바이러스 앞에 특정 지역 이름을 명기하는 것도 병의 발원지를 둘러싼 분리 인식이 투영된 지역 차별 사례이다. 더욱이 최근엔 비대면 소통 영역이 확대되며 익명의 자유를 담보로 무분별한 언어 남발이 전보다 더 늘고 있는 현황이다. 꼭 코로나 19 관련 표현을 상정하지 않고도 미디어가 포함할 수 있는 그 어느 분야에서든지 차별과 혐오가 난무한다. 이 같은 역풍 속에서 SNS의 주 유저층인 10대는 특히 자극적인 표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만큼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무감각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필자가 오늘 소개할 청소년 인문 도서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에서는 위 같은 미디어와 일상 속 혐오. 차별 표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미 너무 익숙해져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에 반문을 제기하며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에 대한 감각을 알 깨워 준다. 총 6장으로 구성된 내용은 테마별 각기 다른 불평등과 고정관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기회의 불평등, 양성평등, 사회적 소수자, 빈부 격차, 인종 차별, 외모 차별 관련 시사 거리가 대주제로 나뉘고 미디어가 이를 반영한 구체적 사례가 함께 등장해 누구나 가독성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다.

 

 1.  불문율로 여겨지는 언론의 차별적 언어 생산 

 

신문 기사와 뉴스는 예부터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공유 매체로 자리매김해왔기 때문에 문화 전파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만큼 활자가 주는 영향력도 막대한데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왕따’라는 표현에 숨겨진 차별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주로 따돌림당하는 피해 학생을 지칭할 때 쓰이는 왕따라는 말은 사실 집단 따돌림을 행한 일부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칭할 때 쓰였던 것이라고 한다. 즉 ‘왕따’는 애초에 가해자 시점에서 생성된 단어로 피해자의 잘못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며 가해자의 괴롭힘 이유를 합리화시키는 경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언어 자체가 폭력성을 띠고 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은어는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많은 사람이 따돌림 피해 학생을 왕따라고 통칭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임대 거지, ~충 등 뉴스와 미디어로 인해 전파된 차별 표현은 넘쳐난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가 확산시키는 혐오의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책을 읽으며 언론이 주는 절대적 믿음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언론에 대한 대중들의 고정된 신뢰의 이미지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 작가가 저서에서 지적하듯 비판 의식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의미도 모른 채 인터넷 용어를 답습할 수 있어서 잘못된 모방으로부터 혐오가 재생산되는 구조에도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2. 클리셰의 오남용

 

미디어가 선동하는 차별 시선은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매체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로맨스 장르에서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는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밀치는 이른바 벽치기 장면이라든지, 신파 장르에서 매번 불쌍하게 비치는 장애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의도적으로 쓰인 잘못된 클리셰이다. 그런데 서사 전개에 있어 교과서처럼 정형화된 이런 장면들은 매스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산재해왔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클리셰가 낙인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라 생각한다. 특정 집단의 일부를 극히 단순화시키고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칫하면 마치 그 집단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다. 고정관념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정답이 되어버린 환경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잊고 사는 인권 침해와 불평등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3. 혐오도 권리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내용은 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혐오도 권리일까? 라는 논제이다. 전부터 혐오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나 책의 독자라면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과 혐오 표현은 그 자체로 상대방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라는 가치도 인간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의미하다는 뜻이다. 만약 타인을 향한 모욕과 비난이 권리가 된다면 우리는 인권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만큼 혐오와 모욕을 드러내는 표현은

국내외에서 부정적 파문을 불러올 여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필자는 혐오와 차별 표현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온라인 차별표현 금지법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참고: https://slownews.kr/76333) 이렇듯 언어 필터링과 관련한 법률은 처벌보다도 피해자들의 반복되는 상처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또 역으로 생각해보면 미디어가 주동한 편견은 미디어가 정정할 때 파급력이 더 클 것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사라짐과 흑인 인어공주의 탄생처럼 기존 패러다임의 문제를 개선 시키는 것도 미디어를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디어를 접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세이다. 우리는 코로나 19로 쌓이는 스트레스에 비례하여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혐오 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둘러보면 곳곳에 만연한 차별 표현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수용’의 태도가 ‘수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필자가 주목해서 읽었던 대목을 아래에 발췌해보겠다.

 

 

 

‘명품 몸매’라는 말에 숨겨진 사실

 

‘명품 몸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봤을 거야. ‘명품 몸매 과시’ 등 인터넷 기사 연예면의 제목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이지. 명품이라는 말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나 상품에 붙이는 말이야. ‘명품 몸매’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몸매를 극찬하는 말로 들리는 한편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어. 인간의 외형을 ’상품‘’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야.

 

 

독자들이 오늘 생활하면서 접한 TV나 인터넷 신문, 유튜브 동영상에서 불편한 장면이 없었는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무엇 때문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소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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