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 독서 칼럼] 신의 영역에 대한 책임, 프랑켄슈타인

인공지능,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가

우리가 사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재가 무엇인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막대한 신드롬을 일으켰던 바둑계의 알파고부터 인공지능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흔히 '초지능'을 갖고 있다는 인공지능의 지능지수는 인간계의 수준의 뛰어넘는 6000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산업적으로 발전하다 보면 우리 인간과 외형도, 내면도 매우 유사한 새로운 생명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를 바탕으로 '프랑켄슈타인'의 내용을 재조명 시켜 보자.

 

 

우리는 흔히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괴물을 창조해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괴물의 이름은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괴물의 이름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다.1 단지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새로운 생명체일 뿐이다. 소설에서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영역인 '새로운 생명체'의 창조를 꿈꾼다. 신의 영역을 건드린 결과, 프랑켄슈타인은 이 소설을 모든 비극을 초래하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흉측한 창조물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어느 날 자신의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살인범이 자신이 창조한 괴물임을 알게 된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만나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 생명체를 만들어주면 인간의 세계에서 유유히 떠나 조용히 살겠다고 말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해보지만, 이 일이 불러올 비극을 상상하자 공포심에 피조물을 찢어버린다. 괴물은 이에 분노를 느껴 프랑켄슈타인의 친구와 신부를 모두 죽이고 프랑켄슈타인도 매우 쇠약해져 죽음을 맞이한다. 이를 본 괴물은 자신의 일이 끝났다며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절 이런 식으로 맞이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기 흉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끔찍한 몰골의 저는 손가락질의 대상일 수밖에 없을 테죠. 당신도 저를 역겨워하며 말을 섞으려 하지 않잖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저의 창조주이신 당신은, 피조물인 저와 단단히 엮여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당신이나 저,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끊기지 않습니다.2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다. '프랑켄슈타인이 흉측한 괴물을 보고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괴물을 책임졌더라면 이러한 비극이 발생했을까?'라고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잘못은 괴물을 창조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이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과 이 생명체의 창조가 초래할 결말에 대한 충분한 상황 파악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신의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그는 그저 창조에 대한 욕심만 앞서 피조물을 만들고 자신이 보기 싫은 몰골의 생명체가 나타나자 도망쳐버린 것이다.

 

 

인공지능, 우리가 단순히 개발만 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초지능의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을 시작하게 되면 인간은 이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예상할 수 없게 되며 아무리 인간이 창조한 것이라고 해도 인간의 손아귀에 둘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비극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명확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인공지능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그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해줄 것인지, 어디까지의 교육과 개발을 허용할 것인지. 이 모든 문제는 아직도 크게 이슈화되고 있으며 우리가 진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창조하기 전에 인공지능을 책임질 수 있는 명확한 윤리의식을 갖추어야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각주

1.참고 : 홍성욱, 크로스 사이언스 20쪽

2.인용 :  소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177쪽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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