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 독서 칼럼] 불행해질 권리의 요구,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이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균등을 원하고 쾌락을 추구한다. 인간은 행복을 원한다.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장티푸스에 걸려, 암에 걸려 죽을 권리, 흉측해진 모습으로 늙어갈 권리,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교당해 열등감을 느낄 권리를 얻고 싶으신가요?"라고 말이다. 우리는 장티푸스에 걸리고 싶지도, 늙어가고 싶지도, 열등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즉,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불행이 없는 세계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이다.

 

 

소설 '멋진 신세계' 속에는 두 개의 구역이 있다. 하나는 흔히 '문명사회'라고 불리는 멋진 신세계, 다른 하나는 '야만인의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문명사회에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선천적인 외모, 지능, 신체적 요소로 가장 상위층인 알파부터 하위층인 입실론까지의 계급으로 나누어진 계급 사회를 이루지만 하위층도, 상위층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하위층은 상위층이 하는 독서, 교양 활동 등을 매우 경멸스럽게 여기고 상위층도 하위층의 노동을 불쌍히 여기도록 신생아 때부터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신체조건과 외모가 모두 좋지 않다고 평가받지만 두뇌가 그 누구보다 좋아 알파 계급으로 판정된 '버나드'이다. 버나드는 항상 자신의 외모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던 도중 만난 '레니나'라는 여성이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레니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호기심이 많은 이 둘은 야만인 구역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존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존의 어머니는 린다라는 사람인데, 린다는 원래 문명사회 사람이었지만 야만인 구역에 잠시 왔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결국 문명사회로 돌아가지 못한 인물이었다.

 

존과 린다는 버나드와 레니나를 따라 문명사회로 가게 되는데, 린다를 오랜만에 본 문명사회의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반가운 기색이 없다. 린다는 오랜 시간 동안 야만인 구역에서 늙어왔기 때문에 축 늘어진 살과 주름진 피부를 보고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린다를 경멸하기 시작한다. 존은 문명사회의 '균등'을 이루기 위한 여러 행위를 보고 경악을 하며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괴로움을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입실론 아이들이 책과 꽃을 경멸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이었다. 문명사회에서는 입실론 계급은 단순 노동을 하는 계급이라고 지정해 놓는다. 문명사회에서는 책은 지식을 쌓도록 도와 반란을 일으키기 쉽게 만들고 꽃은 일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자연물이기 때문에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문명사회에서 입실론 계급의 생산성을 매우 중요하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입실론 신생아들은 책과 꽃을 멀리하도록 암시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의 과정은 이러하다. 입실론 신생아들에게 처음 보는 책과 꽃을 갖다준다. 입실론 아이들이 호기심에 이 물건들을 만지려고 하면 소름 끼치는 굉음을 틀어 신생아들이 책과 꽃을 만지면 굉음이 나온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노동의 생산성을 위해 신생아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의 키워드는 바로 '불행해질 권리'이다. 우리 인간은 행복하고 싶어 한다. 불행을 싫어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앞서 말했던 입실론 신생아들을 향한 책과 꽃 교육도 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이 교육을 함으로써 입실론 계급이 알파 계급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교육은 옳은 것인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인간은 행복과 불행을 떠나 자유와 권리를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누가 강제적으로 행복한 일만 시키면 행복할까? 인간은 그렇지 알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인간은 만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어 하며 속고 싶지 않아 하고 자신의 선택과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속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존재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교육과 제도들이 좋지 않아 보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장티푸스에 걸릴 일이 없다.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를 뺏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늙어가지 않는다. 늙어갈 권리를 뺏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에게 권리와 자유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자유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인권과 선택권을 보장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적인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