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은의 독서 칼럼] 방관이 주는 상처

최근 학교 폭력, 집단 폭행, 왕따, 그리고 피해 청소년들의 고통이나 자살에 관한 뉴스를 자주 듣고 보게 된다. 여러 학교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해결이 안 된 상태로 끝나거나 극단적인 결말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한 명이라도 나서서 이야기한다면 학교폭력도 점차 줄어들 것이고, 그로 인해 자살 같은 극단적인 일은 줄어들 것이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책 <방관자>는 학교폭력을 방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방관자 내의 방관자의 의미는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는 학교폭력 방관자를 일컫는다. 나는 오늘 이런 학교폭력 방관자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첫째, 방관자는 다른 사람에 피해를 관심 두지 않는다. 책에서 할렌백(피해자)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모두 방관만 한다.1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가 하겠지’라던가 ‘내가 한다고 달라지겠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피해를 점점 무관심해져 간다.

 

둘째, 방관자는 방관자를 양성한다. 방관을 한 명이 하고 있다면 ‘침묵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방관을 하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한 명이 지켜보기만 하다가 점차 모여들어 도와주지는 않고 방관만 한다. 책에서 에릭은 자신이 아무 잘못 없다는 듯이 생각한다. 남도 방관을 하고 있어서, 같이 괴롭힌 적이 없어 서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2 그러곤 도와주지 않는다. 실제로도 우리는 저런 생각을 한다. 에릭처럼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모르는 척을 하기도 한다. 한명이 그런 생각을 해 방관을 시작하면 다른사람도 방관을 하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 행동 때문에 피해자는 상처를 입는다. 

 

셋째, 누구든 그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있다. ‘나쁜 말 하면 똑같이 나쁜 말로, 좋은 말을 하면 똑같이 좋은 말로 되돌아온다’라는 뜻의 속담이다.3 속담에 뜻처럼 자신이 안 도와주면 사람들도 똑같이 안 도와주고 반대로 도와주면 똑같이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나는 안하지만 남은 해주길 바란다. 학교폭력에서도 똑같이 학교폭력 방관을 하는것은 괜찮을 것이다. 자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자신이 반대로 피해자가 되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도 똑같이 이용된다. 에릭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에릭과 함께 방관하던 사람들은 에릭을 도와주지 않고 똑같이 방관만 한다.4 실제로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윗글처럼 방관자는 피해를 관심을 가지지 않고, 방관자를 양성하고,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었을 때 무관심에 익숙해진 방관자들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마틴 루서 킹은 “결국 우리는 적의 말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의 침묵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5 폭력도 방관도 피해자에게 똑같이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에게 무관심보다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혹, 나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고 있으면 도와주자.

 

각주

1. 인용: 『방관자』 제임스 프렐러 p99

2. 인용: 『방관자』 제임스 프렐러 p101

3. 참고: terms.naver.com/entry.naver?docId=4292132&cid=47303&categoryId=47303

4. 인용: 『방관자』 제임스 프렐러 p159

5. 인용: 『방관자』 제임스 프렐러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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