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게

10대 마지막 어버이날,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시간이 없다. 수학 숙제가 밀려 지금 당장 시작해도 새벽에 잠들 판에, 철이 든 건지 아직 덜 든 건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곧 10대의 마지막 어버이날이다. 아마 이 글은 내가 풋풋한 학생의 신분으로 부모님께 바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내가 온전히 부모님을 위해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하물며 「심화되는 한(恨)의 정서, 그리고 부모의 낡음」이라는 현대 사회의 부모를 비판하는 글을 썼을 적에도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다. 서운해하실까 봐서다. 난 편지도 잘 쓰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살가운 말을 하기 더 어려운 탓일까. 평소에는 애정이 담긴 말을 하지도 않으면서, 기념일에만 상투적인 말로 장식된 글을 끄적이기 싫었다. 또 부모님의 반응을 생각하니 낯부끄러워 더욱더 싫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온전히 나의 부모님을 위해,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아버지를 위한 글을 써보고 싶다. 유독 아버지와 멀었던 나이기에, 또 한때는 아버지를 싫어하기도 했던 나이기에, 어쩌면 이 글은 내가 언젠가는 해야만 했던. 마음속 깊이 응어리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아버지와 진정한 화해를 이루게 하는 촉매제가 될지도 모른다.

 

우선 아버지를 위한 글이지만 너무 어색해서 어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조금 헷갈린다. 그래서 그냥 이번 글만큼은 형식적인 문법 다 무시하고, 내 맘대로 쓰려고 한다. 높임법도 마구잡이로 사용할 것이다. 또 미디어 경청이라는 공간을 빌려 아버지만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도 약간의 고민이 되지만, 뭐 어떤가. 나의 글이고, 나의 마음인데. 오히려 청소년의 때에 청소년방송 웹사이트에 글을 남길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는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혹독한 교육을 받으며 컸다.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는 유독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나를 칭찬해주기보다는 내 행동의 잘못된 부분 하나하나 지적하며 나를 가르쳤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아버지의 훈육 아래,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고, 특히 예의에 관해서 엄청나게 강조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레 언제 어디서나 예의범절을 지키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 과정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아버지는 너무 과했다. 또 자존심이 강하셔서 가끔 어린 내가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싫증이 나 조금이라도 불평하면, 화를 내시며 어른을 존경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아버지는 존경보다 복종을 원했다. 내가 아버지의 손에서만 자랐다고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나에겐 사랑하는 어머니도 계신다. 다만 우리 집은 교육에서는 주로 아버지가 주도권을 가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를 모두 사랑하시는 중립적인 분이셨을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보다 더 심한 가정에서 자랐던, 혹은 자라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대부분의 기독교 집안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에게는 심심한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

가부간에, 아버지는 내가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까지 그러셨다. 주변 어른들은 부모님에게 나도 사춘기가 있었느냐 묻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당연히 있었다. 외적으로 전혀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외적으로는 티를 낼 이유가 없었다. 집 밖의 모든 환경은 전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다. 학업, 관계, 이성 등 나를 괴롭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오직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과거 아버지의 지나친 권위 의식에 대한 적개심, 서운한 마음뿐이었고, 나는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행동했다면, 사춘기의 나는 서슴지 않고 대항했다. 때문에 아버지와 다투기도 많이 다퉜고, 이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머니와도 많은 갈등을 겪었던 것 같다.

 

만약 아버지가 지금까지 그랬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 얼굴에 침 뱉는 글을 내가 왜 쓰겠는가? 감사하게도 아버지는 달라졌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모습들이 남아있다. (아빠 미안) 그렇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더는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모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나는 아버지가 미웠다. 나를 힘들게 한 아버지가 미웠다. 대체 아버지는 왜 그럴까 매일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계기는, 성경을 통한 영적인 성숙을 이루고 나서였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내게 말했다. 공경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가 밉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내가 진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사랑하셨던 것처럼요."

 

노트북 비밀번호부터 바꿨다. 어느 글에서 봤는데, 컴퓨터 비밀번호를 '아내를 사랑하자'고 바꿨더니 정말로 점점 아내를 사랑하게 됐더랬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내 비밀번호로 바꾸고, 아버지를 인정할 수 없을 때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난 누구보다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었다. 조금만 더 아버지의 마음을 고민해보니, 금방 아버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중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이기에, 나를 키워주고 길러주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기에, 근질거리는 입을 닫았다.

 

그러다 보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내가 아버지에게 대항하지 않으니 아버지와 싸울 일이 없었다. 돌아보면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 가지고 시비를 걸었던 건 나였던 게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보다 30살 넘게 어린 주제에, 머리 좀 컸다고 아버지께 하나하나 말대답하고, 괜히 말꼬리 잡고 늘어져서 아버지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내 딴에는 '할 말은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멋쩍다. 아버지 눈에는 얼마나 어이없고 우습게 보였겠는가. 아버지 나름대로 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이해해주셨던 게 아닌가 싶다.
 

그저 아버지의 행동이 바뀌었다고 내가 아버지를 완전히 용서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몇 년에 걸친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작년에서야 아버지가 처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기도할 때, 아버지의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하셨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 완강했고 거침없었던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니 허무해서였을까.

 

나도 아버지의 노고를 알고 있었다. 나도 아빠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길 어려워했으며, 사랑한다고 하는 날은 거의 기념일 뿐이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참 어려웠다. 쑥스러웠다. 그러다 점점 "에이, 가족인데.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애정 표현을 제쳐뒀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했다. 아버지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내 아버지를 내 상상 속 완벽한 아버지의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아버지 그대로를 존중하기로 했다. 내 맘대로 누군가가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신이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또 아버지의 성격, 아버지가 살아왔던 시대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조금 다른 태도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려 한다. 아버지와의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에베소서 6장 1절

 

아버지, 그때의 나는 몰랐습니다. 그저 아빠가 미웠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아버지의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랐고,

아버지가 위선적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압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해도 다 주려고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주고 있으면서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괜히 혼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공개적으로 글을 써버려서, 민망하신가요?

아버지가 지우라고 하면 지우겠습니다.

그치만 이 글을 보고 아버지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들 아버지를 이해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나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여도, 가장 나의 말을 잘 이해하는 분은 아빠입니다.

겉으로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하여도, 뒤에서 가장 많이 나를 챙겨주려 하고, 나를 위해 고민하는 분은 아빠입니다.

 

어쩌면 엄마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상담 중독자인 엄마는 내가 말만 꺼내면 수첩에다가 뭘 끄적여서 증거를 남기기 때문에,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란 참 민망한 일이거든요.

가볍게 넘어갈 얘기도 엄마는 너무 진지하게 들어버려서,

난 엄마 수강생이 아닌데... 난 아들인데... 하는 생각에

하려던 말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아빠한테는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아빠가 제일 나의 말에 잘 공감해주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아빠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아 답답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인생을 살아 본 아빠가, 더 쉬운 길을 알려줬음에도 따르지 않아

정말, 정말 답답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빠, 너무 쉬우면 인생이 아니잖아요.

직접 파도를 마주해봐야 인생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도 아빠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을 그렇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아빠는 어떤 아빠였습니까?

할아버지에게 아빠가 받고 싶었던 사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유독 아빠에게 더 무거웠던 책임감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나도 아빠의 보살핌에서 벗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곧 사회로 나아갈 텐데, 막상 혼자 세상을 마주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두렵고 떨립니다.

 

미리 말하자면, 아빠가 살았던 세상과 또 다를 것이고,

세상은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충고는 조금 집어넣어 주세요.

아까 말했듯이,

내 파도는 내가 직접 마주해볼게요.

 

어릴 때 아빠가 젊어 보여서, 멋진 아빠여서 참 좋았는데,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서 바쁘게 살다가 문득 아버지를 다시 보았을 때,

아빠가 내 상상 속의 아빠보다 많이 달라져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날 더 빨리 낳지 그랬어요. 연애는 조금만 하고.

그럼 조금이라도 더 아빠가 정정할 때,

호강 시켜 줬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빠,

어릴 때 애교 많은 아들이 아녀서 미안해요.

더 말 잘 듣고 예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대신 선우가 있잖아요.

걘 나보다 더 잘할 거예요.

귀여우니까.

그치만 그래도 걔를 너무 혼내진 마세요.

내비두면 공부는 안 해도, 어떻게든 먹고살 아이잖아요.

먹고 사는 건 걔보다 날 더 걱정해줘요.

 

아빠,

나는 아직도 지혜가 부족해요.

아빠만큼 노련하지도 않고,

아빠가 겪었던 일들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난 절대 못 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난 아직도 아빠를 따라잡지 못했어요.

 

아빠가 세계 최고의 멋진 아빠였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치만 적어도 나에겐,

본받을만한 최고의 아빠였습니다.

내가 정말 아빠 많이 닮은 거 아시죠?

외적으로나, 행동으로나,

특히 내가 제일 어이없는 것 중에 하난데,

나보고는 돈 좀 그만 쓰라고 하면서,

하루에 두세 개는 아빠 이름으로 택배 오잖아요.

어이없어.

 

아무튼 나 아빠 많이 닮았어요.

아빠가 어렸을 때 했던 실수나 잘못들,

내가 똑같이 저지를지도 몰라요.

 

엄마처럼 요리 못하는 아내 만나서,

내가 직접 요리하게 될지도 몰라요.

아빠처럼.

 

엄마처럼 잠 많은 아내 만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빨래할지도 몰라요.

아빠처럼.

 

근데 어쩔 수 없죠, 뭐.

아빠랑 똑같은 실수 한다고 해도,

아빠 닮아서 그런 거니까 너무 뭐라 하지는 마세요.

 

근데 나는요,

조금 더 지혜를 발휘해서,

가정부를 고용하려고요.

그러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지만요.

 

엄마 디스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엄마는 보여주지 말아야겠어요.

 

아빠, 근데 할머니 어버이날 선물 준비하셨어요?

봉투 하나 딸랑 줄려 그러죠?

그러지 말고 나처럼 편지라도 한번 써봐요.

은근 좋아하실걸요.

 

아빠, 17번째 어버이날 축하해요. (내가 만 17세니까요)

성경에서 17은 언약의 숫자라는데(믿거나 말거나),

우리도 약속해요.

앞으로 남은 시간, 

싸우기보다 사랑하며 보내기로.

 

정말 정말 어색하고 친구들이 볼까 무섭지만,

어차피 걔들, 내 글 끝까지 읽지도 않을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 2021.05.08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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