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독서 칼럼] 세금, 윤리적 논쟁에 도달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활과 윤리 시간에 ‘덕윤리’를 배우면서 마이클 센델을 현대 학자로 배운 적이 있다. 현대 학자라고는 하지만 교과서에 나와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1800년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직도 살아있는 21세기 덕윤리 학자였다. 심지어 하버드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시는 멀쩡한 교수님이셨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정확히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책도 쓰셨다.

 

이 책은 10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라고 하면 매우 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대답하려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사람의 생명, 그리고 돈에 관한 정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특히 돈 중에서도 ‘세금’에 관련된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세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세금 관련 학자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자유 지상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매년 백 억대의 돈을 버는 부자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은 돕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는게 맞을까?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냄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즉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찬성 측에 있던 사람들은 공리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반대 측에 섰던 사람들은 ‘자유 지상 주의’라는 사람들인데, 그 중에서도 대표학자인 로버트 노직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수입의 일부를 달라는건, 내 시간을 달라는 것이고,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다’. 이 전에 더욱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돈을 벌 때 부정하게 벌지 않았나’ 그리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거래로 돈을 벌었는가’이다. 이 두가지까지 성립이 된다면, 부자는 더 많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이 돈을 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입장 모두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두 입장 모두 채택하지 않고 싶다. 아니 이 주제에 관해 논쟁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논쟁에서 세금의 용도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애초에 논쟁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금의 용도 중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렇게 하면 더 많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월급이나 연봉이 100만원인 한 사람과 100억인 사람이 있다. 그리고 세금으로는 전체에서 2%를 지불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100만원을 버는 사람은 2만원을, 100억을 버는 사람은 2억을 세금으로 내게 된다. 100억을 버는 사람은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두 사람은 모두 비율적으로는 2%를 세금으로 낸다. 결국 손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많이 내는 세금 또한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비율로 세금을 내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자기 재량껏 세금을 낼 수 있지만 공평하게 세금을 낼 수 있다. 사실 나는 지금 세금을 어떻게 내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세금에 관한 논쟁이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정부는 세금을 더 낼 것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부자들이 더욱 많은 기부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정의에 대한 논쟁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상이 기독교적 사상이 되기를 원하는 것도 당연하다. 기독교는 ‘공동체’를 강조한다. 나를 위해 일하지 않고 너를 위해 일하기 바란다. 이런 생각으로 모두가 살아간다면, 이런 윤리적 문제를 넘어 모두가 잘 살아가는 행복한 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기대하며 나는 내가 먼저 ‘너’를 위해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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