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다은의 사회 칼럼] 동서양의 직업관과 나의 직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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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다수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현대에 노동은 단순히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을 넘어서서 자아 실현을 위한 것으로까지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직업 윤리를 지키지 않아 뉴스에 나는 직업인들도 많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개개인이 직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먼저 과거 동서양 사상가들의 직업 사상을 알아보자. 

 

맹자는 직업을 통해 백성에게 일정한 생활 근거인 항산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자급자족은 생산성을 약화시키고 사회 질서 유지를 어렵게 하는 것이므로 분업을 강조하였다. 그는 정치를 하는 대인과 농업이나 기술에 종사하는 소인을 구별하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 분담을 강조하였다. 순자는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과 생산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분업의 원리를 통한 사회 전체 질서 유지와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였다. 그는 선천적 신분보다 후천적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직업 활동을 통해 개인의 욕망이 적절하게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참고: 2022 수능특강 생활과 윤리 p.66)

 

칼뱅은 루터의 사상을 계승해 직업 소명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직업이란 신으로부터 부름받은 자기 몫의 일이며 귀천이 없다고 보고, 자신의 직업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신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자 신에 대한 봉사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직업에서의 성공은 구원 예정에 대한 증표이자 자기 확신이다. 그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직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부의 축적 자체는 인정하였다. 플라톤은 각자의 능력과 타고난 성향에 따라 직업에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고, 역할 분담을 통한 사회 질서 유지를 강조하였으며 역할 교환에는 반대하였다. 그는 분배된 직업을 개인의 선호에 따라 바꾸거나 자유로운 계층 이동을 하면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치자와 피치자가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고 서로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질인 노동의 가치를 왜곡시킨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노동이란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이며 자기 욕구 충족이라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노동은 분업을 강조하여 인간 소외를 유발하고 직업을 단순히 생계 유지 수단으로 왜곡시키는 강제적 노동이며 착취 수단으로 만든다고 보았다. 그는 분업은 노동을 통한 자아 실현을 어렵게 하므로 분업을 비판하였다. 또한 사람들이 노동 그 자체에 대한 욕구를 가진다고 보았다. (참고: 2022 수능특강 생활과 윤리 p.66)

 

나에게 있어 직업 성공이란 나의 노동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물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이윤이 과연 기분 좋은 이득일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 노동의 결과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나의 능력을 최대한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나의 능력을 발휘해 얻어낸 성취가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고 사회적 약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면 무엇보다 큰 성취일 것이다. 즉, 개개인이 각자의 능력을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위해 쓰고, 그렇게 해서 불평등이 개선된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다음 세대는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더 쉬워지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칼뱅의 직업관과 비교하자면 직업을 신의 소명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정당한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을 강조한 점,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보는 점은 비슷하다. 직업에 귀하고 천함은 없으며 어떤 직업이라도 불법적이지만 않다면 사회 발전에 어떤 방향으로든 기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맹자의 직업관과 비교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정신적인 고양보다 최소한의 일정한 생활 근거가 우선시되어야하고 이것을 국가에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를 엄격히 구분하였으며 다스리는 자는 정신 노동에 전념해 생업에서 면제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직업에 대해 올바른 윤리 의식을 가지고 성장해 미래에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기여하는 직업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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