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영화 칼럼 XII] 싱 스트리트, 창조를 모르는 우리의 청춘을 향해

원하는 것을 좇을 권리가 있는 우리 청춘들에게 바치는 영화 "싱 스트리트"

 

 

우리는 꿈을 적어낸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하기에 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우리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영화 '싱 스트리트'를 소개한다.

 

집안의 경제 형편으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된 코너는 학교에서 모델 지망생 라피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자신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코너는 자신이 밴드에서 활동한다며, 라피나를 뮤직비디오에 캐스팅하고 싶다는 거짓말을 덜컥해버리고 만다. 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위해 그는 여기저기에서 밴드 멤버를 모으기 시작하고, 오합지졸의 "싱 스트리트" 가 결성된다. 전문적인 멤버가 단 한 명도 없음에도 부룩하고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음악을 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코너는 형과의 말다툼, 라피나의 도피, 학교 선생님과의 갈등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지만 결국에는 모든 게 해결되고 라피나와 코너는 행복한 미래를 찾아 떠난다.

 

 

"싱 스트리트" 멤버들을 무시하는 친구에게 코너는 말했다. "넌 박살 낼 줄만 알지, 무언가를 만들어 낼 줄 모르잖아."  자신이 무엇을 즐기는지 깨닫지도 못한 자가 치는 코웃음이 싱 스트리트 멤버들에게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코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틀에 박힌 장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에 가담한다. 흥미를 좇고, 사랑을 찾고, 음악을 만들며 밴드를 결성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발돋움을 마친 것과 마찬가지다.

 

청춘과 밴드, 오직 어릴 때만 맛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후에 원하는 걸 하는 게 늦었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에겐 더 많은 책임이 부과되고,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다.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과 용기만으로 무언가를 설계할 수 있다는 특권을 대체 언제 다시 가질 수 있겠는가?

 

어린 나이에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참 뜻깊은 일이다. 스물에는 스무 살의 청춘이 있고, 마흔 살에는 마흔 만의 젊음이 있듯 10대에게는 10대일 때 더 크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젊은이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어린이들은 축복받은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릴수록 무엇이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다소 개연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보는 이에게 힐링을 선사한다는 면에서만큼은 5점 만점에 5점을 받을 가치가 있는 영화다. 또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영화 '비긴 어게인' 감독의 작품으로, 음악과 영상미 또한 아름답다. 누군가가 자신을 억압하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사랑스러운 소년들의 이야기를 보며 "진정한 꿈"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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