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나의 독서 칼럼] 경쟁에서의 인간성과 정체성

<분리된 평화>를 중심으로

분리된 평화(원서/번역서 : A Separate Peace) | 존 놀스 | 문예출판사- 교보문고

 

나무 위에 있는 소년이 위태로워 보인다. 이 소년이 왜 나무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 단순히 그것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분리된 평화>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황을 배경으로, 미국의 명문 기숙 학교에 재학 중인 16살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이 가하는 폭력을 전달하지만, 이면에서는 경쟁을 강요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아픔을 나타낸다. 주인공은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게 목표인 평범한 모범생 진과 만능 스포츠맨으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의 대상으로 불리는 피니어스이다. 둘은 미국의 명문 기숙 학교에서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지만, 진은 모든 것에서 자신을 앞서는 피니어스를 질투하게 되고, 반대로 진의 마음을 모르는 피니어스는 그에게 순수한 마음을 내어준다.

 

 

진과 피니어스의 성장은 시기와 질투를 동반한 우정의 시간이 회오리가 휘몰아치듯 지나간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친구에 대해 철없는 소년의 질투는 순간적인 사고를 일으킨다. 진이 속한 학년에는 일명 ‘여름 학기를 위한 특별 자살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이 결성되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데번 강의 높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과제를 통과해야 한다. 매번 멋진 다이빙을 보여주었던 피니어스와 두려움을 느끼지만 억지로라도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진은 함께 나무에 서게 되는데 피니어스가 서 있던 나뭇가지가 떨어져 피니어스는 부상을 당한다. 범인은 예상하다시피 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경쟁의 정의에 승자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획일화된 가치관을 주입했다. 이렇게 강요된 경쟁은 마치 진이 나무에서 피니어스를 떨어뜨린 것처럼 '사람다움'이 상실된 기능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고 있다. 또한, 진은 그 또한 평범한 모범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피니어스의 경쟁 상대로밖에 인식하지 않았다. 전쟁의 시기에 평화가 있을까? 전쟁에서 불안과 평안은 공존할 수 있을까? 단지 16살 소녀였던 진에게 적이란 피니어스일 수도 있고, 평화롭지 않던 전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였을 수도 있다.

 

 

결국, 피니어스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만들어진 ‘여름 학기를 위한 특별 자살 클럽’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죽음의 계기가 된다. 피니어스가 겪는 물리적 추락, 진은 자아정체성, 자기 안의 적을 죽인다. 강요된 경쟁에서 그가 잃은 것은 인간성과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의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삶은 또 다른 전쟁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적에 대해 진지하게 증오를 느낄 기회도 없었다. 내가 군복을 입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복무한 것은 학교에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적을 죽였다." 직접 누군가를 죽이진 않았지만, 삶 역시 전쟁과 다를 바 없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듯 살아가지 않고서는 평화가 찾아오기 어렵다는 절망의 표현이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에서도 강요된 경쟁을 겪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가와 국가 간, 정치계, 회사, 하다못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까지 우리는 경쟁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인간성이 파괴되고 정체성마저 잃어버리는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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