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드림의 사회학 칼럼] 관조적 시선의 쓸모

남녀갈등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시각을 제시하며

 

 

몇 달 전, 특정 편의점 프랜차이즈 업체와 브랜드 패션 유통 플랫폼 업체가 남성을 비하하는 표식이 담긴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인터넷상에서 남녀차별, 페미니즘, 남성/여성 혐오와 관련된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근 20년여간 반복되어온 남녀갈등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작금의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남녀갈등의 본질과 남녀갈등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한 칼럼을 작성하였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칡과 등나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대를 휘감고 자라면서 엉키는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학교에서 수도 없이 들은 지겨운 래퍼토리일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서로 대립각을 세울 때 우리는 이를 '갈등' 상황이라고 비유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서로를 휘감아서 밀착된 칡과 등나무의 모습에서 우리는 '대립'과 '다툼'의 이미지를 연상해왔을까? 필자는 여기에 남녀 갈등에 대한 본질을 꿰뚫게 해주는 교훈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서로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은 서로를 좋아하고 말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남자와 여자는 필연적으로 서로 마주치게 된다. 장애인 문제, 소수민족 문제, 성 소수자 문제 등 대부분의 사회갈등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자주 실감하지 못하고 그 대상도 우리의 주변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없지만, 남녀문제는 다르다. 남성이 길거리에 나가서 마주치는 대상 중 절반은 여성이고 여성도 마찬가지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대상의 절반이 남성이다. 남성과 여성은 말하자면 칡과 등나무처럼 '밀착'되어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밀착'이 요즈음 '친밀'이라는 결과 대신 '대립'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왜 인류의 시작단계부터 서로 밀착된 관계였던 남성들과 여성의 대립이 현대사회에 들어 심화하고 있을까? 필자는 가장 큰 원인으로 여성의 지위 신장을 지목하고 싶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현대 사회의 남녀 갈등은 긍정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보자. 근대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성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2의 성이었다.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는 소위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틀 안에 여성을 가두어 놓고 복종과 희생을 강요해왔다.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의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남성만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었고 더군다나 여자가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남존여비 문화가 널리 퍼져있었고 여자는 정절을 지키고 처신을 조심할 것을 강요받으며 일평생을 규방에서만 보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여성 차별이 법으로 규제되기도 하였다. 여성에게는 재산의 처분권과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재산의 상속과 친권의 행사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결혼한 여성의 경우, 남성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직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여성 임금도 남성 임금의 1/2수준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운동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기 시작했다. 1898년에는 한양의 양반 부인 수백여 명이 모여 여성도 고등 교육을 받고 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여권통문'을 발표하였고 유관순 열사가 재학했던 것으로 유명한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많은 여성교육기관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신간회의 자매단체인 여성단체 '근우회'가 설립되어 국내, 간도, 그리고 도쿄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지회를 설치하고 야학, 부인 강좌, 강연회 등을 통해 노동하는 여성들의 조직화와 계몽에 힘썼으며 여성들도 버스 안내양, 가이드 등의 직업을 가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광복 이후 열린 첫 선거에서부터 여성들의 선거권이 보장되었고 최근에는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도 법적으로 거의 남성과 동등한 지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인용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 미래엔 - 한철호 외 7인)

 

여기서 다시 '갈등'의 어원으로 되돌아가 보자. 갈등은 칡과 등나무와 같이 서로 엉켜있을 때 발생한다. 즉 서로 자주 맞닥뜨리고 자주 마주칠 때 발생한다. 그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갈등들을 되짚어보자. 귀족들의 지위가 향상되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관인 의회를 구성하고 왕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할 때 시민혁명의 시작인 '권리청원'이 일어났다. 노사갈등도 차티스트 운동으로 노동자의 지위가 향상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남녀갈등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억압적 문화 속에서 살던 여성들이 근대 여성주의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이루어냈고 비로소 사회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남성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자 '당연히' 남녀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즉 남녀갈등은 두 집단 간의 지위가 예전보다 동등해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인류 역사의 수많은 갈등 중 하나이고 구체제의 몰락을 가져온 귀족과 왕의 갈등, 노동자의 권익 증진을 이루어낸 노사갈등과 같이 결국엔 '남녀평등'을 이루어 낼 '긍정적 갈등'으로 볼 수 있다.  남녀갈등은 현시점에선 사회의 발전을 저해시키고 사회 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필요악인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남녀갈등에 너무 몰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남녀갈등과 관련된 양극단 진영의 주장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여성들은 유리천장, 소득 격차, 출산휴가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남성들은 군대, 역차별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들이 받는 피해를 강조하며 분노 섞인 글을 게시한다. 하지만 자신이 받는 차별만 생각하고 자신이 겪는 문제에 집중하여 상대방 성을 공격하는 것은 남녀갈등을 장기화/ 심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남녀갈등을 남녀평등으로 가는 하나의 필연적 진통으로 생각하고 한발 물러서서 넓은 시야로 지금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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