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드림의 사회학 칼럼] 능력주의 멈춰

불평등 제조기 '능력주의'를 비판하며

 

 

승자독식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은 불공정한 사회구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능력주의 사회 유지에 일조하고 있다. 내신 시험부터 시작된 시험중독은 최근 사망사고로 이슈가 된 환경미화원 시험 중장년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도의 경제 성장이 이뤄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한국인의 삶과 함께해온 ‘능력’ 위주의 평가와 경쟁, 이제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능력주의는 동양의 수나라에서 과거제가 시행되고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각자의 가치에 따라 권력, 명예, 재화를 분배하는 ‘분배적 정의’의 실현을 주창한 고대사회에서 시작되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현대사회로 이어져 왔다.1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기회’ 분배의 기준이 ‘능력’인 이유는 무엇일까? 업적은 보상의 기준은 될 수 있지만,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는 부적절하며(아직 기회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 무슨 업적이 있겠는가) 필요에 따라 분배하면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모두 똑같이 나누어 가지면 자기 계발 의욕이 저하되기 때문에 과거의 업적, 시험, 자격증 같은 ‘능력’의 징표만이 분배의 기준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기존의 봉건제, 세습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펴보면 공정 사회 실현이라는 명목하에 능력주의 문화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계급제, 세습제를 양산해 낸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유리 천장'이라는 말은 주로 여성에 대한 암묵적 사내 승진 차별을 일컫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이 '유리 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언뜻 보기엔 누구나 자신의 노력의 정도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 같지만 사회적 계급 사이에는 엄연한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예전의 귀족 계층과 마찬가지로 '금수저'로 불리는 좋은 태생의 사람들이 양질의 교육과 부모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에 오르고 있고 가끔씩 나오는 소수의 자수성가 사례들은 흙수저들이 구조적 문제가 아닌 자신의 노력 부족에 실패의 원인을 돌리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상류층은 완벽한 능력의 징표가 존재할 수 없으며, 능력은 노력뿐만 아니라 가정환경, 재능 등 우연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는 능력주의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경쟁 사회에서 승리를 쟁취했다고 여기면서 보상을 독차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2020년 의대 신입생의 74.1%가 월 소득 상위 20%인 949만 원 이상의 부유층 출신이라는 통계 자료가 말해주듯 우리 사회의 능력에 따른 경쟁 시스템은 하위 계층에서 노력하는 자에게 포상을 수여 하는 역할이 아니라 상위 계층 중에서 노력하지 않는 자를 탈락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3  이 불평등한 시스템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육 사다리(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가 무너지고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어 사회 분열이 심화될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능력주의로 인한 사회 분열의 심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이 되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근속연수를 채우고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비정규직 근무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반대한다. 자신보다 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자라나면서 받은 가족들의 지원과 주변 환경의 긍정적 영향은 망각한 채 자신의 능력을 본인의 순전한 노력에 대한 징표로 내세우고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채용에 실패한 이유는 '노력 부족'으로 재단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극단적 능력주의의 해악성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선 방법은 무엇일까?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마련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존여비 의식의 개선은 갑오개혁의 개혁법령이 아닌 민간단체(독립협회, 근우회)의 캠페인, 기독교 전파 등으로 인한 민권 의식의 성장을 통해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4 사회가 나의 재능에 따라 부여한 보상은 자신의 노력 덕만은 아니며 선천적 요인, 즉 ‘행운’ 덕임을 인지하는 것이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에게 필요하다.5 능력주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얻은 보상에 대한 재분배의 필요성을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 제도와 법 개선 이전에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5부 중 하나로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갈등론적 관점에서 적극적 우대 조치(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불리한 조건을 완화해 주기 위해 시행하는 조치)와 소득 재분배 정책(조세나 사회 보장 제도를 통하여 소득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생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는 정책), 자발적 기부의 필요성을 상류층에게 인식시키고 정부는 이에 발맞추어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현재보다 강화함으로써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각주

1.인용 : 통합사회 교과서 - 천재교육 구정화 외 저 p.179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구분
2.참고 :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p 106~109 
3.인용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0309250000401?did=NA
4.인용 : 한국사 교과서 - 천재교육 한철호 외 저, p.146 – '근대의식이 확산하다'
5.참고 :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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