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율의 사회 칼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사람이 수천년간 지켜온 '가족'이라는 사랑 그 자체

요즘 여러 사회 문제들과 더불어 저출산 문제가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것은 사회의 여러 문제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다. 또한 저출산 문제로 인한 문제 또한 우리 사회에 큰 위험을 불러올 것이란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 문제이다. 오늘은 국내의 역대 출산 정책과 앞으로 가정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해보고 그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다. 

 

 

저출산 문제는 가족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낳을 것이라 기대되는 신생아의 수는 0.84명으로 출산율 조사 198개국 중에서 198등으로 2년 연속 꼴찌인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1.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쩌면 두 자릿수의 기록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기대 신생아의 수가 1명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예전 대한민국에 상황에 두 번 놀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적게 낳자는 운동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경제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 출산율은 6.0, 1990년대 출산율은 1.5명, 2013년 출산율은 1.22명으로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2

1960년대에는 세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현재 중장년층이 돼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1946~1968)가 등장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나라에는 식량이 부족해 자식을 적게 낳자는 정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1960년대 정부에서는 3 3 35 정책을 시행했다. 이 정책의 의미는 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낳고 35살이 될 때까지 살게 하자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고 이때는 4인 가족의 가정을 추구하였으며 `아들, 딸 구분 없이 둘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표어는 이 당시 상황을 잘 표현해준다. 이때는 식량이 부족해 자식의 수를 국가에서 제한하였다니 현재 상황과 비교하면 뜨악할 만한 상황이 분명하다.

1980년대에도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은 계속되었다. 이 당시에는 유교적인 남아선호사상이 강해 신생아 남녀 성비가 116%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성비를 보였다. 때문에 이 당시 표어로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등이 있다. 또한 1970~1980 초반의 오일쇼크로 정부입장에서는 많은 아이를 낳는 게 우려되어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했고 결국 출산율은 인구 대체율과 같은 수준인 2.1(명)까지 추락해 버렸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 수치가 일시적이라 판단했고, 이는 현재 출산율의 시발점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1990~2000년대에는 드디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출산 정책을 전면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출산 목표를 `산아제한`에서 `자질 향상`으로 수정했다. 국민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이때부터는 남아선호사상을 규제할 것도 없이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쳤다.` 가가호호 둘셋 출산 하하 호호 희망 한국`이라는 표어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냥 망해버렸고 현재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와 같은 표어로 어떻게 해서든 출산을 장려하려 애를 썼다. 현재는 아동수당 같은 출산 장려금 또한 시행되고 있지만 매년 줄어만 가는 출산율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파래진다.

과거를 분석했으니 미래를 상상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소수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는 두 가지 가설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 중 하나인 과도한 경쟁의 관점에서 보자면, i. 사회에서 경쟁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며 다시 출산율이 상승한다. ii. 적은 인원으로 더욱 경쟁이 심화하며 없는 마당에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곤두박질친다. 정도이다. 이 중 그나마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설은 두 번째 일 것이다. 논거는 생략하겠다.

좀 더 가능성 있는 두 번째 가설을 가정하고 미래의 가족의 형태를 그려보자면, 자녀를 아예 낳지 않는 가구의 수가 증가하고, 자녀를 낳는 가정에서도 1명, 많아도 2명까지 낳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바뀐 변수를 확인하자면, 의학의 발전이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양측 부모님들의 수명이 연장될 것이고, 이는 자녀들의 가족들과 함께 살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물론 그런 분위기가 불편해 반대하는 때도 많을 것이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소위 말하는 `꼰대`의 비중은 줄어들게 되고 친구 같은 사이의 조부모와의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가정 내의 분위기와 서로 간의 상호작용 변화이다. 경쟁이 더욱 심화한 사회에서 부모들은 없는 몸까지 쪼개가며 돈을 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이러한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자녀에게도 같이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은 무거운 중압감으로 다가와 불안 속에 하루를 보내고, 또한 애정의 부족으로 정신적 어려움마저 호소할 수 있다. 더욱이 경쟁이 심화한 사회에서 예전과 같은 가족의 온기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정리해보자면 미래에는 자녀를 낳지 않는 가족의 비율이 증가할 것이고, 자녀를 낳아도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족의 비율이 증가하리라 추측된다. 또한 경쟁의 빈도와 중요성은 더욱 확대돼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따뜻한 무언가를 잃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이에 대한 더 많은 종류의 모델들이 제시되고 또 미래에는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 생기겠지만, 자본이 가족의 빈자리를 대신하지는 않길 바랄 따름이다.

 

 

각주

1.인용: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91023.html

2.인용: https://eiec.kdi.re.kr/material/clickView.do?click_yymm=201512&cidx=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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