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명중 : 임서하 통신원] 경기도, 어디까지 가봤니

남한산성, 행궁, 삼전도 비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역사도 분명한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을 꼽자면 선조(25년) 임진왜란, 인조(14년) 병자호란, 고종(13년) 경술국치 등이 있다. 그중 우리나라 왕이 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고 세자(효종)가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병자호란의 역사적인 현장, 남한산성으로 길을 떠나 본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접해있는 국가사적 제57호로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이다. 남한산성은 둘레 11km가 넘는 성벽에 면적은 2.12 km2이다. 인조 2년, 통일신라시대 주장성의 기초위에 쌓기 시작하여 병자호란 이후까지 건설되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기별 성을 쌓는 기법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조(14년)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인조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47일간 항전한 곳이다. 행궁은 임금이 서울의 궁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거나 전쟁,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피난처로 사용하던 곳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임시 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남한산성 행궁은 신분증을 소지한 경기도민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1~5코스까지 탐방코스가 있으며,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다섯 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어장대를 볼 수 있는 1, 2코스가 가장 인기가 좋다. 수어장대에서 내려오면 그 옛날 조선 시대 백성들이 살고 있는 듯한 식당과 카페가 줄지어 있는데, 그 중 닭백숙 전문점이 눈에 많이 띄어 그 유래를 찾아보았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임금이 남한산성에 갇혀 있던 동안 먹을 것이 떨어지자 백성들이 키우던 닭까지 잡아 백숙을 해 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한 유래를 듣게 되었다. 

 

 

인조와 당시 조정은 47일간의 항전 끝에 결국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고 세자까지 볼모로 보내기로 약속한 후 삼전도(현재 잠실 석촌호수)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조아린 굴욕을 겪게 되는데 이를 '삼배구고두례'라고 하며, 청나라의 요청에 따라 청에게 항복했던 상황과 청 태종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의 비석을 세웠는데, 이를 '삼전도 비'라 한다.

 

아들까지 적국에 볼모로 보내고 수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거나 인질로 붙잡혀 가는 와중에도 과연 임금이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 (최명길, 주화파), 아니면 목숨을 걸고 끝까지 항전하며 명나라에 사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김상헌, 척화파) 후대의 우리 후손들이 깊이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분명한 우리의 역사이다.

 

 

[각주 - 출처]

1. 참고 : 세계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 행궁, 팜플렛 내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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