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연의 사회 칼럼] 지금의 동물원은 왜 사라져야 하는가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동물들을 ‘다루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동물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서 탄생한 문화와 공간들이 이제는 인간들 사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이 화제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내 생각을 전하며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해보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당신은 돌고래를 눈앞에서 본 적이 있는가? 돌고래를 만나기 위해 어디로 갔는가? 수족관으로 향하지는 않았는가? 그랬다면, 당신도 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인간의 재미를 위해서 동물들을 가두고 전시하는 공간이 존재해도 되는가’라는 논쟁 속에 말이다. 마린파크에서만 벌써 3번째였던 폐사 돌고래 ‘안덕’은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에서 포획되었으며 2011년 9월 마린파크가 들여왔다. 안덕의 추정 나이는 최대가 25살이었다고 한다. 안덕은 큰돌고래였으며, 큰돌고래 수명이 보통 40년인 점을 고려한다면 한창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한겨레 신문은 마린파크 측이 안덕의 폐사 원인에 대해 면역력 저하에 따른 노령사라고 주장했지만, 그간 정부의 건강 소견서 제출요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안덕의 폐사신고도 정부 점검 후에야 한 사실을 밝혔다. 1마린파크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 묻는다면, 절대 마린파크 혼자만의 문제점이 아니라고 얘기해두고 싶다. 넓은 바다에서 서식해야 하는 돌고래가 그저 인간의 기준에서 넉넉할 뿐인 그 좁디좁은 수족관에 갇히는 것은 돌고래들에게 어쩔 수 없이 온갖 스트레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연의 일원이었던 동물들을 포획해 인간의 눈앞에 데려와 사육해도 되는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에 동물원이 필요할까?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은 주기적으로 나오는 먹이 때문에 야생성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창살 안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동물이면서 동물도 아닌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동인가? 흔히 사람들에게 인간다움, 사람다움을 서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답지 못한 행동이나 표현, 공감 능력을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물론 ‘인간답게 살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살아야 할 장소에서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 그들답게 사는 것이지, 동물원이라는 감옥에 갇혀 인간들의 구경거리로 평생을 보내는 것은 결코 동물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오늘날 인권 못지않게 동물권이라는 것도 발달하고 있다. 과연 동물원이라는 시설이 이러한 동물권의 발달에 맞는 시설인가? 세월이 흐를수록 동물원의 존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에 희귀한 인종, 희소병을 앓는 장애인을 동물원처럼 가둬두고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켰던 ‘인간 동물원’이 있었다. 혹시 이를 보고 눈살 찌푸려졌는가? 어떻게 인간을 동의 없이 가둘 수가 있냐며 분노했는가? 아니면 보호받을 위치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거두어 더 좋은 환경에 살게 해주었다고 생각했는가. 나는 지금 동물원에 관해 얘기하기 위해 인간을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만든 인간 동물원이라는 사례를 들고 왔다. 이건 좀 다른 문제가 되지 않냐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그랬다면, 대체 인간과 동물은 뭐가 그렇게 다른가. 인간 동물원은 오늘날 인간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아주 먼 이야기 같지만 이제야 백 년 정도 지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권과 윤리에 대한 인식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는 이제 그 인간 동물원이 옳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다. 이와 똑같이 백 년 정도가 지나면 우리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인간 동물원’에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야생 동물들을 가둬놓은 동물원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결코 동물에 대한 인식은 정체되어 있지 않으며 동물원이라는 시설에 대한 윤리적인 의식 역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갇혀 사는 동물들의 고통은 이제 단순히 과거와 같이 무감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물들에 필요한 것은 고통받지 않고 살아갈 자유, 본능에 따라 마음 놓고 살아갈 권리이지 인간의 필요 이상의 욕구에 의해 평생 우리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참담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추구하고 유지하고자 한다면 동물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물원을 찬성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모두 묵살할 필요는 없다. 그들도 일리 있는 주장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동물들에 대해 교육하게 되면, 그 아이들은 동물들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으며 후에 동물들을 위한 활동이 증가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동물들을 가두는 동물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이 동물을 책이 아닌 경험으로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과학 기술을 엄청난 속도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현재 영상 그래픽과 증강현실 실현 기술의 수준은 실제를 보는 것과 같다고 느낄 정도로 발달하여 있다. 이를 활용한다면 이제는 실제 동물들을 가두고 학대할 필요 없이도 눈앞에서 동물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인용: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9647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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