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서의 사회 칼럼] 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

 

내 행복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기아를 보고 난 저렇게 밥을 못 먹지 않으니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기꺼이 내 행복을 포기하는 것을 정의라고 한다. 요즈음 사회의 부조리한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나 콘텐츠가 많이 나오면서, 어른들은 우리 사회에 이미 정의가 무너졌다고 말한다. 어른들마저 정의가 무너졌다고 하는데 우리 학생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사회에 나갔을 때 부정부패를 대물림하지 않도록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의 사회에서 정의가 무너진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학교폭력이다. 학교란 정의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며 작은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난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한 부조리함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를 못 가는 상황에서도 사이버 폭력 등 학교폭력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학교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나 피해자보다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간의 방관자들에게 있다. 방관자들은 속으로만 같이 동조하다가 점점 피해자의 단점을 찾아 가해자의 편에 동조하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왕따 학생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학교폭력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고 사는 것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학교폭력 상황에서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부조화가 습관화되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사람들은 사회의 정의 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학교생활, 직장생활에서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것과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당하다는 태도다. 필자는 이렇게 바뀌고 있는 사회를 정의를 중시하는 사회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행복을 얻기 위한 행동은 물론 당연하지만,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며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직접 목격해도 내 이익을 위해 눈 감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정의는 본인의 행복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사회가 부정부패와 부조리로 가득 차게 된다면 지금보다도 돈과 출신 집안을 중시하는 사회가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사회의 심각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연대의 인식과 실천이다. 같은 학교에서도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1%의 강자의 손에 99%의 운명을 맡기고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의 정의는 연대를 실천하며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인데 요즘은 그렇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 사회에서는 새롭게 보게 된 것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며 정의를 구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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