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의 문화 칼럼] 우리는 왜 드라마에 과몰입할까

 

K-드라마 열풍이 부는 요즘, 매년 새로운 배우들이 데뷔하고 수십에서 수백 개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온다. 남녀의 눈물겨운 사랑, 피 튀기는 치열한 복수극, 악당을 무찌르는 멋진 히어로 등 다양한 주제와 화려한 연출들이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의 삶의 일부를 엿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감상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어떤 부분에서 열광하고 재미를 느끼며 희열을 얻는 것일까? 그런 점을 하나하나씩 생각하다 보니 오늘의 기사를 적게 되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대리만족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은 오직 하나의 삶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본인의 시선에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드라마란 감독이 사람의 인생에서 보여주고 싶은 면들만 확대하여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에선 이번 달 대출금 이자를 걱정하지 않고 다음 달에 있을 시험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며 푸른 들판을 뛰놀고 잘생기고 예쁜 애인과 즐겁게 지낸다. 물론 고통과 슬픔을 주는 갈등 상황들도 발생하지만 대부분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이미 전부 해결이 되어있고 행복할 일만 남은 것으로 결말 짓는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선 잘생긴 재벌 2세가 나타나 청혼하거나 나를 괴롭히는 악역들이 마법처럼 처벌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 속의 행복한 면들에 몰입하며 우리 인생에서의 힘든 순간들도 잠시 떨어트려 놓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로 말한 이유와 정반대로 그 드라마의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행을 일삼는 악당들로 정확히 선과 악의 구분이 되어있지만 사실 현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하나의 본성이 아닌 여러 개의 숨겨둔 본성들이 그때그때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배역들은 동시에 수많은 내가 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나날을 꿈꾸는 주인공도 나, 나보다 잘난 주변 사람을 질투하고 잘 안 되길 바라는 악당도 나, 아끼는 친구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주인공의 친구도 전부 나라는 사람의 본성을 하나하나 쪼개 캐릭터로 표현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캐릭터들에 있는 어떠한 면의 나에게 '나도 저런 경험이 있었지, 나도 저런 감정을 느꼈는데'라며 공감하고 재미를 느낀다.

 

마지막으론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많은 친구에게 인터뷰한 결과 본인이 좋아하는 연기자를 보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는 의견이 상당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배우가 실제 성격과 다른 면을 연기하는 것을 봄으로써 색다름을 느끼고 즐긴다. 혹은 재밌게 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를 좋아하게 되어 그 배우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도 드라마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서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혔다. 요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겐 '과몰입했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드라마의 내용을 마치 현실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드라마 안의 캐릭터가 죽으면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쓰이는 말이다.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빠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때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인생을 바라보며 힘든 삶을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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