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호의 독서 칼럼] 자기기만이라는 환상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고

자기 기만, 사실과 다르거나 진실이 아닌 것을 합리화하면서 사실로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1. 이 '기만'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이고 심각한 느낌 때문인지 자기 기만이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 자기 기만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다. 그리고 이런 자기 기만과 만족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소설이 바로 <봄에 나는 없었다>이다.

 

 

성공한 변호사인 남편, 번듯하게 성장한 아이들이 있는 조앤 스쿠다모어는 바그다드에 있는 딸 집에 방문하고 오는 길에 사막 가운데에 고립된다. 폭우가 잦아든 후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 조앤은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며칠을 보내며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축복이라고 여겨 왔던 삶이 사실은 자기 기만으로 꾸며낸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달라지고자 다짐했지만 다시 안락한 집으로 돌아간 순간, 조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작가는 조앤의 자기 기만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가 무너져 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고 견고하게 그려내며 책 밖에 있는 독자에게 스스로 속여가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책을 읽는 중에는 스릴에 가려져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불쾌함이 책장을 덮자마자 떠올랐고, 혹시 나도 이러한 허구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독자의 감정을 조종해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 부분에서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까지도 참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느껴졌다.


이 소설을 집필한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는 20세기에 활약한 작가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잘 알려진 추리 소설 작가이다. 그러나 추리 소설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세밀하게 다루는 심리 소설도 '메리 웨스트매콧(Mary Westmacott)'이라는 필명으로 집필했다2. <봄에 나는 없었다>는 크리스티가 필명을 사용하여 발표한 소설 중 하나로, 뛰어난 심리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봄에 나는 없었다>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된 어휘나 문장이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면서도 섬세한 묘사와 탄탄한 이야기가 뒷받침된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으면서도 여운이 깊게 남는 작품이라서 어려운 책은 부담스럽지만 교훈이 있는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 좋을 것 같다. 또, 긴장감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인용 및 참고]

인용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72962&cid=40942&categoryId=31531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2648&cid=58819&categoryId=58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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