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드림의 사회학 칼럼] 인권 침해의 업스트림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사회적 약자의 인권 침해 예방을 위한 예방책은 무엇일까?

 

인권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이지만 약자들의 인권 침해는 ‘필요’에 의해서만 이슈화된다. 2014년 처음 염전 노예가 이슈화 된 지 7년이 지났지만 그 후로 일어난 일들은 몇몇 염전주에게 1~2년의 징역형이 선고된 것, 염전 노예 구출 경찰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 신안군 내 무연고 변사체가 급증한 것, 추가적으로 새우잡이 어선 노예 사건까지 발생한 것 뿐이다.1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그 사실이 전국에 방송되었는데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미미하다. 단순히 인터넷 상에서 안타깝다는 댓글 몇 개가 달릴 뿐이다. 우리 사회는 소외계층에게 잔인하리만큼 무관심하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막무가내로 신안으로 달려가 노예들을 구출해와야 방관하지 않는 것인가?

 

여기서 ‘업스트림’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싶다. 강에 계속 사람들이 떠내려 올 때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없애기 위해 강의 상류(업스트림)으로 뛰어가는 것처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때도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개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인권 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런 사건 대부분이 가진 공통점은 가해자가 영향력 있는 개인 혹은 집단에게 희생당했고 피해자들이 피해를 강도있게 지속적으로 호소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건 자체의 정치적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염전 노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염전 노예를 구출한 다음에 그들을 책임져줄 수가 없다. 몇몇 피해자들은 심지어 구출된 후 오갈 데 없는 상황에 처하자 제발로 다시 염전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영향력 있는 가해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경제적, 정치적 효용성이 없는 비극을 해결하는 것을 도대체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은 두가지 정도가 있다. 인권 단체의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한 감시와 감사를 강화하고 신안군의 인권 단체처럼 염전노예사건에 반응조차 안하는 단체들을 개선하기 위해 국고 지원 단체에 타 기관의 감시자를 파견 근무시키는 것, 국가 인권 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미 전국 각지에 넘쳐나는 인권단체들이 제 기능을 되찾는다면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침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매번 ‘권고’, ‘요청’ 정도만 하는 국가 인권 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여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확실한 시정과 재발 방지를 꾀해야 한다. 구출된 염전 노예의 거취 문제에 관련한 해결책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일단 장애인 복지 기관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인권 단체와 복지 기관 중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실로암의 집과 같이 장애인을 방치하는 곳들을 개선하기 위한 독립적 감사 기관이 필요하다.

 

추가적으로 현실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있듯이 인권 심각하게 침해된 사건들을 독립적으로 처리하는 ‘인권 재판소’의 창설도 조심스레 제안하고 싶다. 헌법 정신과 다른 법률에 의하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누구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피해에 대한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며 사회가 자신들의 아픔에 무관심할 때,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인권 재판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연 상태에서 힘의 논리에 지배받은 인간들이 사회 계약을 체결하고 국가를 건설한 이유는 더 이상 ‘힘’의 논리에 지배받지 않고 ‘정의’의 지배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국가’와 ‘법’의 존재 이유이다. 

 

이런 대안들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사회적 사각지대를 좁혀가는 것이다. 사회적 사각지대를 좁히기 위해선 이런 제도적 조치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운전시엔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사각지대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만은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새벽4시에 일어나 지구 반대편의 축구경기를 보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영상을 밤새 찾아보는 시간과 열정의 10분의 1 정도면 충분하다. 뉴스 기사에 댓글 다는 수준이 아니라 인권 침해 관련 캠페인에 참여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침해와 관련된 국민청원에 동의하고 소외계층을 돕는 시민단체에서 한달에 한두번 활동하는 것을 모든 청장년층들이 실천한다면 인권 침해 따위의 설자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학과 지망생으로서 약자에 집중하는 사회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금 사회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그것과 관련없는 고상하고 학문적인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의미없고 잔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칫 사회복지학와 사회학을 헷갈리는 것과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사회복지학의 ‘업스트림’이 사회학인 것을, 강의 상류로 올라가서도 강 하류에서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방관을 그만두고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역지사지, 공감의 사회적 필요를 구성원 모두가 인식하고 약자의 인권을 위해 다함께 목소리를 모으고 약자들의 인권을 위한 삶을 살면 어떨까? 가장 좋은 사회는 경제적으로 발전한,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정치가 잘 이뤄지는 사회가 아니라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의 인권이 최대한으로 보장받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각주

1.참조 : https://namu.wiki/w/2014년%20신안%20염전%20노예%20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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