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연의 사회 칼럼] 노키즈존은 아동혐오다

 

머나먼 과거부터 우리나라 곳곳에 유교 사상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나이가 어린 사람을 향한 멸시와 조롱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잼민이’가 그저 재미있는 유행 단어가 되고 ‘노키즈존’이 논쟁거리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이다. 일명 노키즈존. 말그대로 어린이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개 어린이들이 시끄럽고 사고를 많이 친다는 이유로, 조용히 어른들끼리만 가게를 즐기겠다는 이유로 노키즈존을 선언하며, 이런 가게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나는 노키즈존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노키즈존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지를 아동혐오와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는 사회적 약속은 특정된 누군가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이전에 피해를 준 아이를 본 적이 있으니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오류적 기준으로 연령에 제한을 두는 것은 그저 차별일 뿐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노키즈존이라는 단어에 키즈 대신 노인, 여성, 동양인 등의 단어만 넣어봐도 얼마나 터무니없는 차별일 뿐인지를 인지할 수 있다. 아동을 잠재적인 폭탄 취급하면서 그럴싸한 변명과 그럴싸한 용어로 감싸 아동혐오를 포장하는 것이 바로 노키즈존의 실상이다.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노키즈존은 사회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가르침들을 사전에 차단해버린다. 공공예절을 태어나면서부터 지키는 사람은 없다. 모두 사회와 소통하며 배워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 현장 속에서 직접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무지’에 대한 무시와 일종의 혐오가 뒤섞이며, 아이들에게서 사회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뺏는 이기적인 선택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사회는 아이에게 관용과 배려를 베풀 줄 알아야한다. 어린이를 향한 혐오가 알게 모르게 심화되고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좋은 사회를 향한 신호가 아니다. 노키즈존은 아이인 그들이 어렸을 적부터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기준에 의해 배척당하는 경험을 쌓으며 자라게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어른들이 노인이 되고 그 당시 아이들이 사회를 이끄는 나이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자. 아이들은 영원히 배척하면 배척당하는 존재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존중할 줄 알아야한다. 이것이 더불어 사는 삶이다. 물론 편의보다는 배려에 가치를 두어 아이들에게 신경쓰며 살아가는 것은 수고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거쳐 성숙해진 사람들이라면 억누르는 방법이 아니라 포용하는 방법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배려와 존중을 피부로 느끼며 자란 아이들은 또다시 다음 어린 세대들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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