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아의 사회 칼럼] 투표권은 평등하지 않다

얼마 전에 지방선거가 있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으나 내가 사는 군포에서는 기권표가 많이 나왔다. 투표용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투표함에 넣음으로써 정치판에 항의한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후보나 정당을 찍지 않고서도 유권자들은 어떻게든 자기 의사와 존재감을 표출한다. 재밌는 점이다. 다만, 그것도 투표를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투표할 수 없다면 높은음이든 낮은음이든 악다구니든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다.

 

어떤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엔 투표소가 절벽 위에 있어서 암벽등반을 해야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열심히 올라가서 투표소로 향하는 중에는 나무뿌리가 땅 위로 뻗어있어서 계속 발이 걸려 넘어지고, 겨우 입구까지 다다라도 웬 허들이 있어서 점프해야만 지나갈 수 있단다. 격한 몸놀림 후엔 항상 배에 신호가 온다. 화장실로 향하지만, 앞에 있는 것은 그 입구를 가로막은 바위다. 철인 3종 선수도 절망에 빠질 것이다. 

 

 

물론 이딴 투표소는 없다. 다수에게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많은 투표소가 저 미친 마을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다. 제20대 대선이 있었을 때 광주광역시의 전체 23개의 투표소 중 16개가 장애인 차별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는데(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얘기하겠다), 접근성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 차별적 투표소들은 입구가 가파른 경사로거나 계단이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도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어떤 경우 불가능했다. 2층에 있는데도 엘리베이터는 부재해 장애인의 접근을 사실상 원천 봉쇄한 투표소도 있었다.1 휠체어의 작은 바퀴가 빠지는 하수구 뚜껑 틈, 넘기 힘든 턱 등도 무시 못 할 장애물로 작용했다. 화장실도 장애물이 막고 있거나 문이 좁았다.

 

그렇게 힘들면 집에서 투표하는 거소투표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소투표는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주변 사람이 투표자의 선택을 자기 맘대로 조작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우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거소투표는 하나의 선택지여야 한다. 그것이 투표소의 열악한 접근성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발달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도 갖가지 문제에 부닥친다. 투표를 하려면 일단 후보들의 공약과 그것이 품고 있는 대충의 비전을 파악해야 하는데, 어려운 말 위주인 선거 공보물은 발달장애인들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점자 공보물이 부족하고 투표소에 비치해야 하는 특수 도구도 잘 관리되지 않아서 시각 장애인들의 투표권 행사에 걸림돌이 된다.2

 

장애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부 노동자들의 투표권도 부실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되는데 그래서 공휴일이 없다. 선거일에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사전투표가 있긴 하지만, 그날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당연히 투표권이 있지만, 그것은 고용주에게 ‘선언’할 때 비로소 발동된다. 일하다가 사장님한테 “저 투표하고 오겠습니다”하고 2시간가량 투표소에 갔다 와야 하는 엄청난 도전이다. 도전인 이유는 이들이 노동권 밖에 위치함으로 인해 종속적이고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

 

이 외에도 많은 경우가 있을 테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보이는 바대로 누군가의 투표권이 제약되는 현상의 원인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이며 제도적인 불평등, 차별, 배제에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동권, 노동권 등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게 일상이다. 투표권 문제는 그 파생물의 하나일 뿐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 사회는 실질적으로 민주적인가? 선거라는 형식적 제도만 세워놓고 사회의 전체적인 운영은커녕 투표권 보장조차 민주주의에 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좁게는 경사로와 턱에 대한 문제 제기, 크게는 전체적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20년 넘게 지속되었음에도 사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은 시민의 힘이 약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런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린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체제를 우호적으로 설명하는데 쓰였던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사회 비판적 개념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의심을 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민주적이지 않을 수 있다, 투표권은 평등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1.참고:https://www.jnilbo.com/view/media/view?code=2022052217512055053

2.참고: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349773_28993.html

3.:참고:https://m.segye.com/view/20220307515641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