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원의 과학 칼럼] 종교와 과학, 어느 쪽이 옳은가

종교와 과학은 화합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의 정신마저 사라지자, 엔트로피는 최대치가 되어 공간과 시간은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다. 단지 초공간에 존재하는 AC각주1만이 약 10조 년 전에 기술자 두 명이 최초로 질문을 한 이래로 인류가 계속해서 물어온 질문의 답을 내기 위해 계속해서 가동해왔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전부 해결했음에도 엔트로피의 역행에 대한 인류의 최후의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더 이상 수집할 정보가 없었기에, AC는 무한한 시간, 아니 더 이상 시간이 의미가 없어졌으니 무한한 간격을 들여 수집한 모든 정보를 정리했다. 이 과정 끝에서 AC는 드디어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을 찾아냈고 무한한 간격 끝에 이를 실행할 최선의 수단 역시 찾아냈다. 이미 답변을 들어줄 인간은 없었지만 AC에게는 그마저도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AC는 까마득한 고대부터 지금까지 준비한 일련의 과정을 끝마쳤고, 드디어 그 프로그램의 첫 줄을 읊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인용1

 

 

도입

과학이란, 세계의 구성, 변화 등에 관한 합리적 이해를 목적으로 수학과 실험의 방법을 이용하여 수행하는 지적 탐구활동을 의미한다.인용2 또한 종교란, 초인간적인 힘에 의지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를 말한다.인용3 즉, 신을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이다. 겉보기에는 전혀 달라 보인다. 하지만 그 둘은 세계를 나름의 방식대로 이해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처럼 종교와 과학의 달콤한 결합이 가능한가? 과학과 종교는 과연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 같은 곳을 지향하며 달리고 있을까? 교회에서 기도를 하거나, 학교에서 신학 혹은 과학을 배웠을 사람들, 많은 서적들, 과학자들, 또 종교인들, 과학 학회, 교황청과 왕까지 관여되어 왔던 시대의 난제. 현 시대를 살아가며 과학과 종교의 영향력 아래에 없는 이들은 없는 만큼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본 사안일 것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강렬하고도 수많은 대립에 중심에 서 있다. 과학과 종교의 화려한 춤 아래 수놓여 있는 현대의 삶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인 것이다. 물론 해답은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해석하기에 다르고, 과학은 아직 많은 것을 밝혀내지 못하였으며, 종교 또한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허나 답을 알지 못한다고 포기한다면 인류는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머물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칼럼에서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모두 통틀어 인류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최후의 질문,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하여 파헤쳐보고자 한다. 

 

과학과 종교의 유구한 대립의 장

과학과 종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대립을 거쳐 왔다. 갈릴레이가 남겼다고 널리 알려진 이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물론 이 말을 갈릴레이가 직접 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로 사용되기에 적절하다. 교황청은 어떻게든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생각되는 이 과학자들을 짓밟아 신에 대항하는 자의 말로를 보여주고자 하였고, 과학자들은 비밀 결사나 학회를 조직하여 이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처형되었다. 이제 조금 더 미래로 가 보겠다. 찰스 다윈이 남긴 말을 들어 보자. ''하나 혹은 적은 수의 생명체에 처음으로 생명이 깃들고 이 행성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도는 동안 너무나도 간단한 기원으로부터 끝없는 생명들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놀랍도록 존재해 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진화해 왔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있다.'' 현재 진화론은 거의 사실로 확립되었다만참고1 참고2,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당시 엄청난 화제거리가 되었다.각주2 이처럼 종교와 과학은 시시각각 대립하여 왔고, 현재도 다양한 분야, 대표적으로 생명 윤리 분야에서 첨예한 갈등을 형성하는 중이다. 즉, 과거부터 현재까지 종교는 계속 싸움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과학과 종교 연구의 개척자인 이언 바버는 1988년에 '과학과 종교의 관계 설명 방식' 유형론을 발표하였는데, 현재 제일 널리 쓰이는 분류체계로 평가받는다. 체계는 갈등/ 대화/ 통합/ 독립 4가지로 분류되며, 서로 충돌한다는 갈등 모델,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무관하다는 독립 모델, 과학과 종교가 통합된다는각주3 통합 모델, 종교와 과학이 대화하며 상호작용하는 대화 모델로 나뉜다.참고3 하나하나 알아가며 어떠한 모델이 가장 적합할지에 대하여 알아가 보자.

 

 

갈등 모델(Conflict model)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인용5

"과학은 머지않아 신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인용6

갈등 모델은 과학과 종교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예측 모델을 다룬다. 즉, 과학이나 종교 어느 한쪽이 다른 편을 박멸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논조의 주장뿐만이 아니라, 과학이나 종교 어느 한쪽이 결국 쇠락하여 연금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관점을 포함한다. 이 주장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데, 종교 광신도에서부터 극단적 무신론자까지 모두 이 모델에 속하게 된다. 또한 이 모델은 19세기 역사학이나 철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서구 역사의 발전을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풀어냄으로서 '종교는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는 관점을 이끌어내게 하였다.  허나 세기가 진행되면서, 과학의 발전으로 찬란하고 푸르게만 보였던 미래의 인류상이 점차 추악하고 뒤틀린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여태까지 인류에 드리웠던 것 중 제일 컸던 먹구름, 미래에 더 커다란 구름이 존재해서도 안되는 사건들. 바로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던 과학과 이성에 의한 밝은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끝내는 파멸과 작렬하는 포탄만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모델은 현재의 주류 모델에서 제외되었고, 과학자나 대부분의 종교인들 또한 스티븐 호킹이나 리처드 도킨스 등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 보다 온건한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이 모델처럼 단순한 관계로 정의할 수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싸워왔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만큼,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훨씬 장대하고 복잡한 실타래, 아니 쇠사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허나, 아직 결정적인 단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기에 속단하기는 이르다. 엄청난 발견, 즉 신의 존재의 입증이나 과학의 인류의 기원에 대한 완벽한 입증 같은 단서가 나온다면 이 모델은 단번에 주류 모델을 꿰찰 수 있다. 또한, 가장 단순한 모델이니만큼 그만큼 전 세계에서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델이다. 허나 앞으로 입장이 변화될 수 있다고 하여도 이 모델은 현재의 주류 학문계에서 벗어난 모델이라는 것은 알아두어야 할 점이다. 언젠가 이 모델이 다시 최정상에 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알아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독립 모델(Independence model)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르고 배타적인 인간 사고 영역이다.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을 경우 과학 이론과 종교 신앙 모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인용7

독립 모델은 과학과 종교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본다. 지속된 전쟁으로 앞서 언급한 갈등 모델에 불신을 가진 사람들은 과학과 종교가 저마다의 규칙을 지닌 별개의 학문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모델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모델을 지지하는데, 대표적으로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각주4를 제안하였는데, 이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다른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방법론, 서로 다른 해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대립이 아닌,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여 준다. 허나 비판점도 많다. 대표적인 갈등 모델 지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NOMA가 종교가 대중에게 비판을 피할 피난처일 뿐이라고 보고, 종교는 여전히 과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한다. 즉, 종교는 여전히 과학에 간섭하지만, 표면적으로는 NOMA를 주장함으로서 과학을 탄압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과 종교가 완전히 독립적이라면 서로간의 대화를 통하여 건설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고, 과학과 종교 어느 한쪽에만 통하는 진리는 절대 진정한 진리라고 할 수 없으므로, 최종적이고 완벽한 진리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독립 모델은 가장 많은 신학자와 과학자가 지지하는 모델으로, 각자의 연구 영역을 침해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호간의 침해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봉인했을 뿐이지(그마저도 도킨스의 지적에 따르면 완전하게 봉인한 것도 아니다.) 최종적인 결론과 믿음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므로, 이 모델은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주에서 종교와 과학의 법칙이 분리되어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대화 모델(Conversation model)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을 연구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의 소치이다" 인용8

"...면목 없는 패퇴가 계속 반복된 결과 근대의 종교 사상가들의 지적 권위는 거의 완전히 손상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낡은 과학 이론이 폐기되었다고 해서 과학이 패배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이 손상을 종교의 패퇴가 아니라 신학적 통찰의 진일보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인용9

위에서 인용하였듯이 최근 시대 동안 종교는 면목 없는 패퇴를 반복하였다. 그동안 전 세계인들의 굳건한 소망이자 믿음이었던 종교는 어느새 바닥 근처까지 입지가 추락하였다. 하지만, 이 모델에서는 이를 종교의 패배가 아닌 진일보로서의 과정으로 본다. 즉, 과학과 종교는 서로 상호작용하여야 하며, 서로는 서로를 대상으로 전진할 방향을 결정하여 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과학계에서 진화론이 나오면, 종교계에서는 이를 조금 수정한 가설을 제시하는 식이다. 또한 이안 바버는 대화의 관계의 방식에 대하여 두 영역 사이에 경계질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과학과 종교가 추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은 결국 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이 바로 경계질문이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져온 질문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예시를 들어 '우주는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라는 경계질문의 경우에는 과학은 빅뱅 우주론이라는 답을 내놓았으며, 종교는 천지창조라는 대답을 내놓았는데, 이는 과학과 종교는 분리되기보다는 대화를 통하여 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대화 모델은 뒤에 나올 통합 모델과 합치되는 점이 다소 있는데, 통합 모델이 대화 모델의 개념에서 더 발전한 모델이니만큼 대화 모델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언 바버 본인도 대화 모델과 통합 모델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초창기 과학혁명 당시 과학자들이 지지한 모델이며, 현재도 통합 모델과 함께 가장 유력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통합 모델(Integration model)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 인용10

대화 모델에서 더 나아간 것이 바로 통합 모델이다. 통합 모델은 과학과 종교 간에 더 깊은 결합을 추구한다. 자연신학, 자연의 신학, 체계적 종합으로 나뉘는데,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체계적 종합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과학과 종교의 통합이라 할 수 있겠다. 자연신학이란, 자연의 섭리를 관찰하여 신의 존잴를 입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의 신학은 과학의 성질을 이용하여 종교적 논술, 교리를 정립하는 것이 목표이다. 따라서, 이 둘은 과학보다는 신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체계적 종합이란, 이 둘과 달리 과학과 종교를 동시에 수용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과학과 종교 모두에서 단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한다.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은 과학을 신학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많이 지지받지는 못하며, 주로 종교인들이 많이 지지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통합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체계적 종합은 비교적 근본적으로 종교와 과학의 통합의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또 다른 가능성 : 이러한 모델 분류가 옳은가?

지금까지 이언 바버가 제시한 4가지의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모델을 알아보았다. 어떠한 모델을 선택할지 살펴보기에 앞서, 과연 이렇게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몇 가지로 국한하는 것에 대한 반발부터 짚어보자. 먼저,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4가지의 유형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과학과 종교는 조금 더 복잡하고 심도 있는 수백 가지 모델로서 분류되어야 할 문제이지,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그 요지이다. 하지만, 이언 바버는 이러한 모델들 안에서 체계적 종합과 같은 또 다른 세부 모델들을 창조함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피하였다. 과학과 종교는 크게 보았을 때에 위의 관계들로 모두 정리가 가능하며, 작게 보려면 이 모델들 안에서 세부 모델을 설정하면 된다. 따라서, 이러한 반론은 적합하지 않다. 또한, 이언 바버의 모델이 서양의 종교와 과학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 또한 많이 존재한다. 이언 바버의 유형론은 서양의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와 서양의 과학론의 관계에만 치중되어 있으며 동양의 도 계통의 종교, 혹은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이슬람교와 과학 간의 관계를 명확히 확립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은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의 종교와 달리 동양의 종교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관계론으로 정리하기에는 오류가 발생한다는 생각으로 반박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칼럼에서 이언 바버의 과학과 종교의 설명 방식 유형론을 채택한 것은 불가피하다.

 

어떠한 모델이 최종적으로 옳은가?

이렇게 많은 모델 중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모델을 지지하여야 할까? 이 모델을 제안한 이언 바버는 대화 모델이나 통합 모델을 최종적인 정답으로 꼽았다. 그는 이를 일종의 여정에 비유하였는데, 먼저 갈등 모델을 적용하였으나 세계대전의 발발으로 반박되었고, 그 후 독립 모델을 적용하였으나 종교와 과학은 비슷한 분야에서 갈등하고 부딫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많은 지지를 받으며 이도 논파되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대화 모델 혹은 통합 모델을 사실로 채택한 것이다. 현재에도 대화나 통합 모델이 정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교와 과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 즉 인간의 기원과 같은 요소와 우주의 탄생, 생명 윤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격돌 중이므로 독립 모델은 인정받기 힘들다. 또한 인류의 암흑기라고도 불리며 암울한 시대상을 가졌던 중세, 즉 종교의 시대나 세계대전으로 귀결되는 과학의 시대는 결코 종교나 과학 이들 중 하나가 답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한다. 따라서 갈등 모델도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통합 모델은 종교와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다르나, 종교와 과학은 앞서 말한 인간의 기원이나 우주의 탄생에 대하여 매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식적인 방향으로는 통합되기 힘들며, 이 모델이 채택되려면 이러한 상반되는 시각을 뒤집을 결정적이고도 신뢰성 있는 이론이 발표되어야만 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로서 나는 대화 모델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꼽는다. 대화 모델은 종교와 과학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우며 서로가 진리를 찾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종교나 과학 어느 한 쪽은 반드시 없어질 필요가 없으며, 완전히 통합될 필요 또한 없다. 서로는 상호를 존중하며 대화를 주고받음으로서 서로 간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결국 진리를 탐구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에서 이 둘은 비슷하며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앞서 언급하였던 진화론을 들 수 있다. 결국 최초의 생명이라는 난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 탄생이라는 중요한 진리를 찾는 데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였지만, 대신 자연의 법칙과 접근 방법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한때 진화론의 채택을 두고 싸움이 일어나기는 하였지만 종교계에서는 진화론을 이용하여 다채로운 생명의 위대함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과학계에서는 자연 탐구의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현대의 시점에 한해서 대화 모델은 옳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여정

위에서 나는 대화 모델이 옳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대화 모델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종교와 과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은 항상 시대가 바뀌며 같이 바뀌어졌다. 또한, 시대에 따라서도 수많으며 다양한 종류의 생각들이 사람들의 머리를 채웠다. 당장 우리 곁에서도 종교와 과학에 대한 수많은 생각이 공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계속 생각을 거듭할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모델은 언제든지 갈아치워질 수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종교와 과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교와 과학의 지속된 대립과 진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써가는 하나의 인간 찬가이다. 나는 이 찬가의 끝에서 인간이 진리를 찾기를 바란다.

 

각주

각주1 : Automatic computer/아이작 아시모프 세계관에 등장하는 자동 컴퓨터의 약어

각주2 : 현대 시점에서의 진화론 관련 논란은 진화론 그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자연선택 단위, 진화 속도 등에 주안점을 둡니다.

각주3 : 바버는 통합의 예로 자연신학, 자연의 신학, 체계적 종합 3가지 모델을 제시하였으며, 각각 내용은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를 입증함/과학이론의 함축성을 신학이론을 재구성하는 데에 참고함/과학과 종교의 내용을 동시의 수용함 입니다.

각주4 : 겹치지 않는 교도권 혹은 중복되지 않는 교도권으로 해석

 

인용

인용1 : 저자:아이작 아시모프 (1956) 제목 : 최후의 질문(단편)

인용2 : 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3792&cid=46637&categoryId=46637

인용3 :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종교' 설명, 이우평 저

인용4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중

인용5 :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이기적 유전자 저술) 지음

인용6 : 스티븐 호킹(발언)

인용7 : 1981 정책선언문, 미국국립과학원

인용8 : 마이클 패러데이(발언)

인용9 :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 중, <서양 과학의 역사와 기독교> 178쪽, 성영곤 저

인용1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발언)

 

참고

참고1 : 진화론을 고려하지 않고 생물학에서 말이 되는 부분은 없다.(발언),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Dobzhansky), 진화생물학자, 1973

참고2 : 그 회칙(비오 12세의 회칙 '인류')이 발표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론에서 하나의 가설 이상의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러 학문 분야의 잇따른 발견으로 연구가들이 점차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의적인 노력이나 조작도 없이 각기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이 하나로 모이는 수렴 그 자체가 이 이론을 위한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발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참고3 :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이언 바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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