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우의 국어 칼럼] 영화와 문학으로 보는 메밀꽃 필 무렵

 

나의 아저씨(박해영/세계사/2022) 대본집을 읽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본이 다가 아니구나. 대본집에는 이야기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연출과 연기를 통해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감독이나 연기자 등 다른 여러 사람들의 몫이었다. 아무리 드라마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더라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고 작가의 것과 여러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껏 나는 문학을 영화로 각색한 사례를 수없이 봐 왔다. 나의 아저씨 대본집을 통해 문학과 영화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고 문학이 영상매체로 탈바꿈한 사례를 분석하고 싶어졌다.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인쇄물 형태뿐만 아니라 TV, 만화, 영화, 라디오 등 다양한 시청각적 매체로 드러나는 문학 작품이 나타난다. 문학을 각색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원작을 영상으로 구체화하는 매체 전환 과정에서 서로 간 차이가 발생한다. 그중 가장 큰 차이는 서술자의 유무이다. 문학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술자가 존재한다. 서술자는 사건을 서술하거나 인물의 내면 심리를 직접 묘사한다. 반면 영화는 서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발화, 행동이나 배경 음악, 시각적 요소들을 통해 서술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따라서 인물의 심리는 인물의 행위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1

 

모든 서사 작품에서 오프닝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작품이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제시한다. 첫 문장(장면)은 단순히 처음 쓴 문장이 아니라, 작가(감독)가 의도적으로 맨 앞에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나도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안재훈/2012)을 분석할 때 첫 장면에 주목했다. 첫 장면은 나귀, 비, 메밀꽃으로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감독이 허 생원의 나귀, 동이와 허 생원이 건너는 개울, 메밀꽃을 핵심 소재로 설정했음을 알 수 있었다.2

 

당나귀와 관련된 서사는 원작(메밀꽃 필 무렵/이효석)에서 허생원의 시각에서 서술자가 요약 진술 했었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 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중략)...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끊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 아미타불로 장돌이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 내용의 위치도 봉평장을 떠난 이후로 당나귀 서사는 허생원의 장돌뱅이로서의 삶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나귀가 바를 끊구 지금 야단이에요!” 직후에 제시하여 이 서사를 회상신으로 당나귀의 소중함에 초점을 맞춰 나귀를 바라보는 허생원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데 활용하였다.

 

원래 “야단이에요” 뒤에는 서술자가 허생원의 시각에서 나귀에 대해 요약적 제시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는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 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슬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허생원이 허덕이며 충주집을 뛰쳐나간 사실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귀가 허생원에게 소중함을 제시해야 허생원이 “야단이에요”를 듣고 왜 이렇게 헐레벌떡 뛰쳐나갔는지를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영상 매체에서는 서술자가 없어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이용하기 어렵다. 이 한계를 보완하고자 원작에서 뒷부분에 있던 내용을 앞부분으로 끌고 온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메밀꽃은 허생원과 처녀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매개로 쓰였다. 원작에서는 이 이야기가 달밤을 매개로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 허생원이 말을 타고 얘기만 하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면 지루하기 때문에 감독은 이 부분을 회상 신에 내레이션을 입힌 장면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장면을 메밀꽃으로 연결했다. 개울은 허생원이 동이와의 관계를 깨닫는 곳으로 원작에서도 애니메이션에서도 중요한 공간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원작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원작과 크게 다른 각색 요소를 제시하고 마치려고 한다. 조 선달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졌다. 그러니까 원작보다 조 선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영화에 서술자가 없어 인물의 요약 제시나 내면 심리 묘사 등을 하지 못하는 한계를 조 선달을 통해 보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원작에서 조 선달은 허 생원과 과거 처녀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화 상대에 불과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뿐 아니라 원작에서 서술자가 했던 진술을 조 선달이 대신하고 있다. 왜 봉평장을 매번 들르냐고 물으며 허생원이 봉평장을 매번 들른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한편, “마음이 쓰이는 게로군”이라고 말하며 허 생원의 심리 묘사였던 부분을 조 선달의 대사로 변형했다.

 

결국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은 가족찾기라는 원작의 주요 모티브를 유지하고 있어 원작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매체 변환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인물의 발화와 행동, 회상신, 전개 순서 변화 등 여러 변형을 시도하여 충분히 해결하였다고 평가내릴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 소설과 애니메이션은 내가 전에 읽고 보았던 것들이라 둘이 큰 차이가 있을까하고 회의적인 태도로 작품을 분석하였다. 그런데 많은 차이가 보였다. 더 나아가 그것이 각 매체의 특성에 기인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익숙하다 여겼던 작품도 다른 목적과 태도로 바라보면 다양한 정보를 추출해 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각주

1.참고:https://blog.daum.net/ysssik/15578504
2.인용:https://brunch.co.kr/@bbm/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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