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아의 사회 칼럼] 조기축구와 경제

이윤추구에 경제를 맡긴 사회 속에서 조기축구의 의미

우리에겐 이윤 추구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그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풍족하게 생산되고 공급될 것이며, 그 덕분에 우리 모두의 경제생활이 풍족해질 거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를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긴 후 멀리서 시장의 역동을 지켜보기만 하거나 가끔 수정을 가하는 경우가 있어도 대체로 그것을 믿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계속 어려우며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도 끊임없이 내적 결핍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여전히 가난이 존재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경제생활에 숨이 막혀 자아실현에 어려움을 겪는다. 의문이 든다.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데 이윤추구의 힘은 왜 믿음에 대한 축복을 아낄까. 그 힘에 생산을 일임하면 진정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사실인데,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말 그대로 오직 이윤이므로,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써 이들에게 중요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윤 창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언가가 필요해도 기업이 그것에서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면 생산되지 않는다. 무엇이 일단 생산되었다면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구매력 부족으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은 공급을 받지 못한다. 또 어떤 것이 이윤을 남긴다고 해도 불충분하면 결격이다. 충분하지 않을 경우 기회비용 때문에 생산자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특히 독점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들의 경우 그 커트라인이 매우 높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거대한 경제력을 부여했건만 그 경제력은 큰돈을 얻는 게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1

 

기업이나 사업가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현명하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사회에 있다. 이윤 부문에 경제를 전적으로 맡기고 멀리서 관조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회가 자기 본연의 목적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 목적이란 모든 구성원의 안정적이고 풍요로우며 즐거운 삶이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사회는 이윤 추구 시스템의 작동이 사회 자신의 목적과 괴리되어서 구성원들의 필요와 욕구가 방치되어 버리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경제는 문제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사회는 이윤추구를 경제 운영의 수단 중 하나라고 간주해야 한다. 물론 그것의 힘과 위대함은 지금의 놀라운 생산력으로 증명되지만, 그 결과로써 진정 풍요로운 사회가 도래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확실히 그 하나의 수단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회는 자신의 역동성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필요로하지만 이윤이 남지 않아 생산되지 않던 것들을 생산해내야 하며 돈 때문에 시대의 풍요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 이윤추구 시스템의 목적이 아니라 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적극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 노력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내가 경험한 것은 축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난 축구를 좋아한다. 근데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다. 축구가 간단한 스포츠이긴 하지만 경기를 하려면 최소 인원 22명과 이 떼거리가 투닥투닥 뛸 수 있는 운동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기를 못 하는 사람이 내 주변만 해도 많고 전국적으로는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오래전에 만든 게 조기축구회다. 축구에 열정이 있는 몇몇이 현수막을 걸든 뭘 하든 해서 회원을 모은 다음 회비를 걷어서 그걸로 장비도 사고 운동장 대여도 하고 가끔은 회식도 한다(이런 친목은 조기축구회의 유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조직 구성도 나름 체계적이다. 회장도 있고 총무도 있고 감독은 물론 코치에 심지어 어떤 곳은 수석코치도 있다.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얼마 전부터 조기축구회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조기축구는 하나의 경제활동이라는 점이다. 축구 경기를 하고 싶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그것에 필요한 '타인'과 물적 수단을 '얻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돈이 나오는 경제활동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축구 경기를 꾸리는 과정이 과연 사업가나 기업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조기축구회가 아니고서야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동네 축구인들의 욕구가 어떻게 충족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축구뿐만이 아니다. 다른 수많은 필요와 욕구 또한 이윤 추구의 원리에 의해 배제된다. 이런 구조에서 과연 돈만 쫓는 것이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합리적인 선택인가? 경제활동에 대한 정의를 확장해서 더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조기축구가 하나의 사소한 예시였음 한다.

 

 

1. 참고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32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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