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서의 시사 칼럼] 존엄사는 허락되어야 할까

사람의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에 대한 이슈는 예전부터 계속 불거져 왔던 것 중 하나이다. 최근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가 개봉을 앞두면서 이는 사람들이 안락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80대 중반의 앙드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중년의 딸 에마뉘엘은 아버지를 돌보게 되는데, 앙드레는 딸에게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전한다. 에마뉘엘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을 돕는 일이 가슴 아픈 일이 되겠지만, 충분히 삶을 살았고, 자신이 늙었으니 스스로 죽을 권리를 행사한다는 앙드레의 가치관도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앙드레가 원했던 안락사란 정확히 무엇일까? 이러한 안락사는 '소극적 안락사'라고 하여, '존엄사'라고도 불리는데,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환자의 동의와 강한 의지가 있다면 존엄사는 절대 나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란 것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사람이 늙거나 불치병에 걸렸을 때 본인이 사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되면 죽음이 그들에게 무작정 나쁜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 죽음에 대한 권리는 개인에게 있고, 그 개인 본인의 생명이기 때문에 개인이 생명을 멈추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환자가 원하지 않는데 생명 연장 시도를 통해 불치병으로 계속 고생하거나, 노화로 힘들어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는 고통을 겪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죽음을 원하는 사람에게 삶을 강제하는 것은 삶을 원하는 자에게 죽음을 강제하는 것의 반대이지만 같은 맥락으로, 자신이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면 원하는 삶의 끝마침을 제공해 주는 것이 의사와 가족이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불치명 환자들이나 늙은 사람들이 죽음을 원할 때는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왔고, 이미 삶을 충분히 누렸다고 느낄 때일 것이다. <다 잘된 거야>에서 앙드레는 휴게소에서 구급차 대원들과 식사하게 되는데, 구급차 대원 중 한 명이 "왜 죽으려고 하세요? 사는 게 좋잖아요?" 라고 묻자,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앙드레라고 사는 게 좋았던 시절이 없었을까? 죽음에 대해 충분히 고뇌해본 그는 자신 나름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환자의 안락사는 법적으로 보호자가 요청할 수 있는 권리지만 의사의 몰이해에 따라 외면되는 사례가 너무 많아,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나 방치된 죽음을 맞는 사례들만 늘어나고 있다.1 이러한 일들이 덜 일어나길 바라고 존엄사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환자가 원한다면 그들을 위한 평안한 죽음을 주는 것이 좋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참고 자료

1. 한겨레 신문 9월 1일자 '안락사 찬반 논쟁 사이, 다른 죽음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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