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준의 사회 칼럼] 어떤 선행을 선택하시겠습니까

先行과 善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선행은 학습적 선행을 뜻한다. 현재 학년보다 앞선 교육 바로 이 사회의 선행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가는 자로서 감히 선행을 칼럼 주제로 쓰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칼럼이니 주제 또한 나의 선택이라 너그러이 읽어주시길 바란다. 나름의 선행, 앞선교육 으로 지친 적도 있고 깊이를 논의하는 부분에서는 부족함 또한 늘 따르므로 과연 선행이란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까지 해야 하며 바른 방법은 무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사실 어느 때에는 한 학년의 수학 교재를 6번 이상 풀어본 적이 내가 지쳤던 바로 그 구간이었다.

 

나라에서 선행은 무리한 교육을 유도하고 바르지 않은 경쟁을 일으킨다며 선행학습 금지법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무수히 많은 우리 청소년들은 선행에 지쳐가고 이겨내가며 도전하는 매일을 생활화 하고 있다. 금지법은 학교기관에서나 적용되고 사교육의 세계에서는 인기몰이 중이다. 선행의 진도로 평가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필자도 학교생활 속에서 친구들의 문제집을 보며 진도에 놀라고 부족한 나 자신에 놀라는 매일을 반복한 적도 많다. 자극도 되고 지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앞선 진도와 반복, 대학을 졸업하면 끝이 날까 싶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선행이 따른다는 것을 부모님께 귀 따갑게 들어 알기에 아마도 선행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단어인 것은 분명할 것 같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까

 

결국 선행이란 더 나은 나를 위한 노력인 것이고 그것이 현재로서는 학생이니 학습의 진도 깊이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고 나를 갈고닦는 한 부분이며 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럼 선행이라는 말보다는 예습으로 바꿔 말하면 어떨까 예습으로 바꿔 말하니 부드럽게 느껴지기는 하나 왠지 선행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강한 에너지가 약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필자만 느껴지는 느낌이길바래본다. 무리한 선행으로 지쳐 힘든 시기를 보내기 보다 나에게 맞는 수준의 학습에 깊이를 파묻으며 예습과 복습을 반복하면 좋은 결과로 성장하지 않을까. 반복 이라는 말이 우리를 지치게도 하지만 반대로 반복만이 나에 두려움을 사라지게 해줄 친구인 것도 맞다. 한국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않던가.

 

한자로 보아도 그렇다. 선행의 한자풀이는 선이라는 글자로 뜻이 달라진다. 청소년의 시기에는 앞선 자를 사용하여 학업에 열중하면 좋겠고 성인이 된 후에는 베풀 선 자를 사용하며 바르고 옳은 행실로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잘못된 선행은 학대라는 말도 있다. 잘못된 선행이란 괴롭고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른 선행도 잘못된 선행도 우리가 잘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여 나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베풀 선 자를 사용하여 밝은 선행을 실행하며 살아가는 내가 되지 않을까. 내 생각을 잘 정리하고 판단하며 전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先行, 늘 앞서 해야할 일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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