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온전히 나의 삶을 사는 것

 

 

필자는 '비판적 사고와 철학'이라는 수업에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주제로 철학 에세이를 작성하였다.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삶,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삶,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삶,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사는 삶 등등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온전히 나의 삶을 사는 것을 지향한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은 내 인생을 온전히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온전한 나의 삶은 중심이 잡힌 삶이자 온전히 나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삶이자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할 줄 아는 삶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갈등을 겪는다. 사회적 관계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님과의 갈등은 극심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청소년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나는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을 때 내 생각과 가치관이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만은 명확해야 했다. 나의 선택은 온전히 나에게서 나온 것이어야 했다. 사후에 그 누구도 탓하지 않기 위해서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가 작동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지 않은 것이 명확해질 때,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주체가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청소년기의 경험을 통해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주체성임을 느꼈다. 

 

그렇다면 왜 주체적이고 중심을 잡은 삶이 중요할까?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내 안에 있는 자아인 양심의 부름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선택의 과정에서 사회의 평균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곤 한다. 물론 사회적 규범이나 요구되는 역할을 저버릴 수는 없겠지만, 하이데서는 사회의 목소리에 집중한 나머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지 말자고 말한다. 사회의 평균 목소리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목소리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하이데거의 입장에 동의하며 양심의 부름과 유사한 개념으로 "제2의 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제2의 나는 나만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자 나만을 바라보는 존재이다. 내가 제2의 나를 도외시하고 챙겨주지 않는다면, 내 자아는 흔들리게 된다. 이 말은 내가 중심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내 안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1

 

내 안을 잘 돌보고 중심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왜 공부하고, 왜 관계를 맺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면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어렵다. 공동체 속에서 나의 취향을 잃어가기 전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나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한다면 나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할 청소년들에게 온전히 그대들의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찬란한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온전히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결과보다도 과정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참견과 충고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본인의 선명한 삶의 목표를 쫓은 선택을 내렸으면 한다. 

 

각주

1.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93141&cid=41908&categoryId=4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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