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호의 시사 칼럼] 비난과 용서

군중 속에 숨어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최근 SNS의 확산으로 유명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행동이 더욱 많이 노출되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 또한 쉽게 보인다. 이런 SNS의 기능은 좋은 점도 가지고 있지만 최근 부작용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바로 악성 댓글, 악플이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도 단순히 남을 깎아내리는 하는 악플이 아닌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에 달리는 비판 혹은 비난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에 달리는 비판들과 비난들을 보고 기존의 악플보다 훨씬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기존의 악플들과 달리 명확한 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어떠한 비난을 받아도 괜찮은 걸까? 만일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보통 사람들은 잘못에 대한 비난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 그 사람을 옹호해주거나 그 사람의 잘못을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도를 넘는 비난이 보여도 쉽게 의견을 내지 못한다.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한 가치판단은 모든 사람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비난의 용인 정도가 바뀐다.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무차별적인 비난하는 사람들은 본인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사회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언뜻 보기에 매우 타당해 보인다. 또한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판단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객관적이고 간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크게 반박하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경향이 강해지며 언뜻 보기에도 도를 넘는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런 사람들은 집단의 힘을 빌려 본인의 표현을 정당화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비난과 비판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먼저 비난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결정이나 잘못을 책잡아 나쁘게 말하는 것이고 비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실에 대해 진위 성악 등을 판단하여 평가하는 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난과 비판은 명백히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부터 비난하는 의견을 찾아 그 비난이 잘못에 대해 비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을 빌미로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것인지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렵고 어떤 글을 보고 비난인지 비판인지를 판단하는 것조차 때에 따라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무차별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제지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다른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바로 용서의 가치이다. 보통 사람들이 용서라고 하면 단순히 그 사람의 죄를 없애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용서는 단순히 죄를 없애주는 것이 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런 좌절의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위로이지 자신을 향한 원망과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비판이 아니다. 따라서 용서는 그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 사람들이 차라리 감옥에 넣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 따위는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감옥에 가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가장 끔찍한 벌일까? 또한 감옥에 간다고 한들 개과천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잘못이 크면 클수록 다시 올라가는 과정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갔다면 계속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본인이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오른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미 삶이 망가진 이들에게 삶이 더 망가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합당한 벌을 받으려면 다시 일어나 사회의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용서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용서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용서란 그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 심판받으면 되고 기회를 잡는다 해도 그 사람이 저지른 죄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며 그 사람을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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