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영화칼럼 1]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그는 감독이 된다.

<걸어도 걸어도>로 살펴보는 오즈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저항과 성장에 대하여.

 

 

 

 

일본 감독들에게 오즈 야스지로는 벗어나야 할 인물이다. 가령 그들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면 더욱이 그렇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은 오즈라는 휘장이 만들어낸 그림자에서 답습만 할 뿐이라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그 고통의 오랜 피해자 중 한 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나는 이 글에서 오즈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기까지의 고레에다의 노력을 그의 대표작 <걸어도 걸어도>를 통해 살펴보려한다.

  

 

 

PD출신 감독인 고레에다의 초기 필모를 살펴보면 형식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그를 괴롭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무엇이 상실을 낳는지, 상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그 사이 고전부터 로드무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에 도전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고르지 못하고 결국 오즈의 영향 아래 있다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했던 사무라이 영화<하나>에서는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다. 마침내 그는 <걸어도 걸어도>에서 오즈에게 정면으로 부딪힌다.

 

 

 

 

 

 

 <걸어도 걸어도>는 장남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모인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가 담고 있는 잔인한 이면과 그것의 중화를 담고 있다. 감독은 이 과정에서 오즈의 형식을 거리낌 없이 차용한다. 바로 정물의 샷이다

 

오즈의 영화를 살펴보면 정물과 공간 즉 프레임 내부의 것들을 정확한 앵글로 담아내며 그것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정서를 담아내는 숏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엄마가 료타의 어린 시절이 담긴 앨범을 꺼내 죽은 장남의 이야기를 나눌 때 순간 카메라는 2층 방으로 넘어가 앨범이 담겨있던 정물로서의 서랍의 빈자리를 바라본다. 그때 오즈의 영화에서처럼 사물이 주는 정서가 흘러내린다.

 

 

 

 

 

 

하지만 고레에다는 오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오즈는 완벽한 구도적 이미지를 통해 발생한 정서를 중시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단지 그림의 일환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고레에다는 그림이던 인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고레에다의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준단 사실을 알면서도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여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즈의 영화 속에선 죽은 아내의 유품을 홀로 남은 며느리에게 주는 다정한 아버지가, 고레에다의 영화 속에선 아들과의 합가를 가로 막지 못하게 혼자 남은 며느리에게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잔인한 어머니가 존재하게 된다.

  

 

고레에다는 내러티브보다 시각적 플롯을 진전시켰던 오즈와는 다르게 오즈의 형식에 드라마라는 살을 입힌다. 그의 영화 속에서는 인물들의 대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가 존재한다. 내러티브적 목적을 갖고 달려간다기 보단 그들의 대화가 흘러가는대로 내러티브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복잡하고 때론 잔인하게 엇갈리기도 하는 그의 대사는 마치 오즈에게 이렇게 반문하는 듯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때론 이렇게 복잡하고 잔인하기 십상이다. 단단한 형식에서 오는 정서로 이것을 담아낼 수 있겠는가?” 오즈에게 부딪히며 그는 자신만의 절절한 고통이 담긴 삶을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했을 때, 가족이라는 것에 부딪혀야 했고 오즈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 덕분에 그는 이제 더 이상 오즈의 휘장이 만들어낸 그늘로부터 벗어나 따스한 햇살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최근작 <세 번째 살인>을 통해 가족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려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요한 노력이 투쟁이 끊이지 않기를, 그로인해 더 넓은 세상을 담아내길 응원하고 싶다.

 

 

 

 

 

칼럼소개:  영화를 읽어내려갈 때 감독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화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감독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정수의 영화칼럼]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특히 감독에게 집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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