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뉴스

[류종백의 축구 르네상스] 고마워요, 대한민국을 외쳐줘서

카잔이라 쓰고 기적의 땅이라 읽는다.
韓, '디펜딩 챔피언' 독일 꺾고 유종의 미.

대한민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디펜딩 챔피언 '전차군단' 독일을 꺾고 승리를 거뒀다.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승리는 지난 2010 남아공 대회 그리스와의 1차전 경기 이후 자그마치 8년 만이다.



#쉽지 않았던 월드컵 도전, 아시아의 호랑이는 아직 이빨이 빠지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축구대표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는 기본이고 신태용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선수들은 줄줄이 부상을 당해 러시아행 비행기를 보지도 못했다.


러시아에 가서도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다.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무리하게 인플레이를 만들어보려던 박주호(울산 현대/31)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잔여경기에 아예 출전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두 번째 경기에서 '캡틴' 기성용(스완지 시티/29)은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전치 2주를 진단받으며 사실상 월드컵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경우의 수를 다시 따져가며 한 골, 한 골이 중요했던 축구대표팀이었기에 주축 선수의 이탈은 너무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손흥민은 승리에 배가 고팠고, 기성용은 벤치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25)은 적은 나이에 세계의 벽에 부딪혔다. 조별리그에서 단 한차례도 승리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짐을 싸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항상 경기에 나설 때면 승리에 대한 승부욕이 넘친다던 손흥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경기가 너무 야속해서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그의 입지는 변화했다. 세대교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축구대표팀에서 손흥민은 에이스이자 큰형 역할을 하게 됐고 8년 전 패기 넘치는 막내였던 기성용은 최고참이자 주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특히 매경기마다 승리에 배고파있는 손흥민은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뜻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아 주저앉는 장면이 있었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볐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푸른 피치 구석구석을 누볐고 경기에서 패할 때면 눈물을 쏟으며 "다음 경기는 더 열심히 뛰어 국민 여러분들께 승리를 선물하겠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한국 축구는 원석을 가공해내는데 성공했다.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수확을 한 명만 뽑자면 열 명중 여덟 명은 골키퍼 조현우(대구 FC/26)를 뽑을 것이다. 여태까지의 아시아 골키퍼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은 조현우는 개막 전까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라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축구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장하며 눈부신 선방을 보였다. 축구팬들과 외신은 스페인의 간판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맨체스터 유나이티드/27)와 그를 비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청난 순발력으로 수차례의 슈퍼세이브를 보여준 조현우는 이미 K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영웅이다. 지난 2013년에 대구 FC에 입단한 그는 간간이 대표팀에 이름은 올렸지만 데뷔전은 지난해 11월에 치뤘다. 주전 골키퍼 김승규에 부상 때문에 운 좋게 출전 기회를 얻은 조현우는 이번 월드컵 3차전이 겨우 A매치 9번째 경기일 정도로 경험이 많은,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멋진 선방쇼를 앞세워 전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하였고 축구대표팀의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서는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까지 하며 축구 시장에 이름을 알리는데 완전히 성공하였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대한민국은 존재 자체로 빛났다.

세계 1위 독일을 두 점차로 이겼지만 승점에서 밀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1, 2차전을 연달아 패한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 승리는 물론 동시간대에 펼쳐지는 같은 조 다른 경기에서 멕시코가 승리해줘야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게다가 두 팀이 모두 이긴다는 가정하에도 한 팀은 2점 차 이상의 승부를 내야 한다는 그야말로 희망 회로였다.


전반전은 F조의 두 경기 모두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하지만 후반전에 들어서자 희비는 엇갈렸다. 멕시코와 스웨덴에 경기는 스웨덴이 이른 시간 선취 득점에 성공하더니 줄곧 추가골을 성공시켰고 상대 자책골까지 유도하며 3: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한국과 독일의 경기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김영권(광저우 헝다/28)이 문전에서 침착하게 선취 득점에 성공해 한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80년 만에 조별예선 탈락 위기에 놓인 독일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32)까지 공격에 가담시켰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주세종(아산 무궁화 FC/27)이 수비라인에서 끊어내 길게 찔러준 대횡단 패스를 손흥민이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경기는 대한민국의 2:0 완승으로 종료됐다.




#여러 가지 기록이 나오게 된 독일의 패배

독일은 그 어느 대회보다 우승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뢰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독일은 모든 메이저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였고 지난 월드컵에서는 황금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올여름, 러시아의 경기장에서는 더 이상 독일의 플레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에게 2:0으로 패하며 F조 최하위를 기록한 독일은 본국으로 돌아가야한다.


독일의 이례적인 패배 속에서 나온 몇 가지 이색적인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독일의 조별예선 탈락은 80년 만이다. - 축구 강국 독일은 지난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단 한 번도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한국에 발목을 잡히며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게다가 독일의 전반전 무득점은 32년 만이다.


2. 전대회 우승국에 대한 징크스는 3회 연속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 징크스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탈락하며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축구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금의 희생이 나중엔 결국 이익이 될 것이다." S사의 월드컵 해설위원인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남긴 말이다. 


이어 박지성 위원은 "축구협회 말고도 한국 축구에는 많은 이해관계들이 섞여 있다. 그들은 희생하지 않고 이익만 찾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한국 축구는 누가 봐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아니 힘든 상황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경기 중에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선수들의 작은 플레이를 가지고 한국 축구의 뿌리 전체를 욕하는 것 역시도 좋지 않다. 경기장 안에서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경기장 밖에서의 일이다.

태극마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기에, 4년 뒤에 거리를 다시 붉게 물들일 붉은 악마들이 있기에 대한민국 축구는 오래된 상처를 뜯어내고 새 살이 나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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