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칼럼

[김도현의 인권칼럼 2] 우리 곁의 난민

낯섦에 대한 무지와 혐오가 불러온 '가짜 난민' 논란

얼마 전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해 동아리원들과 함께 학교 안에서 조그만 전시회를 열었다. 마침 예멘인들의 제주 입국이 이슈가 되고 있던 터였다. 학교 현관에 '세계 난민의 날'이라는 가랜더를 걸고, 전시할 사진을 붙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 한 선생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물으셨다. "너희는 우리가 난민을 수용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자꾸 허용하면 그걸 악용하지 않겠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사례는 극소수일 거라고 말씀드렸고, 대화는 거기서 적당히 끝났다.       


예멘의 난민신청자들이 진짜 난민이 아니라, 제도를 악용하는 ‘가짜 난민’이라는 주장은  인터넷에서도 꽤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취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난민 심사와 소송을 이어가며 시간을 버는 ‘예비 불법체류자’라는 소리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제주에 온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단순 취업을 목적으로 제도를 악용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부풀려진 우려와는 다르게 그동안 우리나라에 와서 난민신청을 한 사람들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비율 자체도 4.1%로, 세계 평균의 10분의1에 불과하다. 선생님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나는 사소해 보이는 이 사건을 조금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부 사람들이 예멘인들을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옷차림이 '멀쩡'하고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 타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용이한 젊은 남자들 위주로 입국했다는 것, 이들 대부분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쿠알라룸푸르-제주도 직항 노선을 통해 입국했는데 이슬람 신자가 많은 말레이시아를 두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것, 한국 정부에서 고기잡이 등 일자리를 알선했으나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향후 본인 사업 시작에 용이한 식당 일자리를 선호한다는 점, '제주의 예멘 난민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400여명에 달하는 이들이 집단 행동을 한다는 점 등이다.


'난민’에게 마땅한 옷차림은 무엇일까? 예멘에 남은 가족들과 연락하기 위해 갖고 있는 휴대폰은 왜 또 문제일까? 건장한 청년은 난민이 될 수 없을까?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난민인정제도를 마련해 놓은 제주도로 와서는 안 되나? 난민이라면 식당 일자리를 찾아보기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기잡이 일에 감사해야 하나? 난민들의 집단 행동과 연대는, 우리가 통제해야 하는 대상인가?


‘진짜 힘들어서 한국 온 거라며? 그럼 살아남은 것도 감사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은근한 속삭임들이, 나는 두렵다. 머리 속에 단단하게 똬리 틀고 있는 ‘난민’이라는 획일적인 이미지를 두고, 거기 어긋나는 사람들은 ‘예비 불법체류자’로 매도하는 시선은 성폭행 피해자에게 ‘순결한 피해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짜 난민’과 ‘진짜 난민’을 가려내라는 요구가 폭력적인 이유다.


제주도를 찾은 예멘인들이 '가짜 난민'이라는 주장은 우리나라 난민 제도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라기보다 두려움과 무지에서 자라나는 혐오에 가깝다. 무슬림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을 재생산하는 댓글에서 시작해, 난민 수용 반대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으며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리는 혐오를, 나는 겁에 질려 바라본다. 난민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규정할 때, 그들은 ‘우리 세금’을 뜯어내는 사람, ‘우리 가족’에게 위험한 사람,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오늘도 애써 잠을 청하고 있을 그들은 누군가의 엄마, 아빠, 오빠, 동생이고, 고국에선 셰프, 대학생, 선생님, 광고회사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난민은 안전과 평화를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먼 피난길 끝에 도착한 땅, 그들의 하루하루가 따뜻한 환대로 물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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