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식상한 질문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아주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내가 누구인지 몇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참고해서 ‘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바란다. 나는 과거의 총집합이다. 과거의 내 경험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과거의 내 행동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결정됐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도 언젠가는 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지금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항상 완성형이 아닌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더 나은 ‘나’로 발전해나가면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이 될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가끔 실수하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만 나는, 여러분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란다. 언제나 최고는 아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주변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시련이 닥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우리는 좋은 사람이다. 이 생각을 가지고 항상 타인에게,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어디가서 ‘나는 좋은 사람입니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 전까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누구에게 들을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후세계를 상상하기도 했다.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지금부터 말하려 한다. 죽음이 가장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고로 죽음을 맞이 할 수도 있고 갑자기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이처럼 다수의 부분은 마음의 준비와 정리를 할 틈도 없이 죽게 된다. 그래서 유난히 죽음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야 한다. 한편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추위가 있기에 외투를 입는것이의미 있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것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즐거운 걸지도 모른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럭낵이라는 섬에는 스트럴드블럭 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를 말하는데 나도 이들이 처음에는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영원히 사는 것이 행복
우리 주변에는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대한민국의 65세 노인 빈곤율이 45.7%나 된다고 한다.1)꼭 노인들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임금 혹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가난한 사람도 있고, 돈을 벌었는데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서 낭비하거나 사기 등등 여러 이유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가난’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더는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 이 글에서이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빈’의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먼저 ‘박돌의 죽음’이라는 책은 박돌어미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들의 진료를 거부당하고 결국 아들인 박돌의 죽음으로 하층민들의 빈곤한 삶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 다른 책인 ‘화수분’에서는 가난 이라는 역경 속에서 살아가는 화수분과 그의 가족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짐으로써 가난의 고난에 대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처럼 빈곤은 하층민들의 삶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사회 발전을 저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 방범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제 강점기 때는 토지조사제도 등과 같은 잘못된 사회구조를 통해 문제가 발생했다. 지금 우리도 사회적 구조가 빈곤의 원인이 되는지 생
거의 몇 달 동안 글이 잘 안 써졌다. 어렴풋이 생각해본 여러 주제 이를테면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가’ 따위의 주제들로 글을 써봐도 식상한 얘기들이나 정리되지 않는 문장들만 써 내려가 졌다. 이것을 기회로 내가 글을 쓰는 행위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이 글에 내놓겠다. ‘세상을 향한 청소년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 실제로 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후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다양한 분야 중에 인문학 칼럼을 써보기로 마음먹고 ‘인간’과 ‘세상’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들의 필연과 우연의 어떠한 경계에서 복잡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냥 읽던 책들에서 내재 되어있는 주제와 작가의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주위에 작은 가치에도 집중하게 되었다. 단지 글을 쓰기 위해 했던 것들에서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실제로 나 자신을 성찰해보기도 했다. ‘전통’에 관한 글을 쓰면서 우리나라의 전통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는 살아있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없는 한 우리는 계속 현재에서만 살 것이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오늘도 과거와 미래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살자고 말하려 한다. 먼저 과거에 사는 사람은 결코 추억을 회상하거나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과거에 사는 사람은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사람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거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알다시피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은 우리가 손댈 수 없고 바뀔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이렇게 했더라면’ 따위의 후회는 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이 초래한 결과이다. 하지만 한가지 다행인 것이 있다.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과거의 후회한 일을 기억하고 반성하면서 반복하지 않는다면 또 다음의 후회는 막을 수 있다. 그러니 후회하고 자책하기보다는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현재에 충실히 살아야 한다. 미래에 사는 사람들은 미래의 일을 걱정
우리 주변을 보면 습관적으로 이를테면 “나는 안될 거야” 같은 부정적인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할 수 있어”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 당연히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려 한다. 인문학이라는 분야가 원래 그렇겠지만 단연코 긍정적인 자세는 생각보다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큰 파문을 준다. 사소한 긍정적인 생각, 태도가 자신에게는 당연히 좋을뿐더러 주변인들 사회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의 힘을 잘 보여주는 예시로 플라시보 효과에 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플라세보 효과란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투여하면서 진짜 약이라고 하면 환자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에 병이 낫는 현상을 말한다.1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발생 할 수 있을까? 바로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환자의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긍정적인 자세로 문제를 대할 때 더 잘 해결 할 수 있고 그 효과가 자신에게 가장 크게 나타날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가 자신에
현대 사회는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농업 사회였던 우리 사회가 어느덧 역사가 되어 정보 사회로 변화하였다. 불과 몇십 년 전을 보더라도 휴대전화나 실시간 온라인 수업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없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전통일지도 모른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우리만의 문화가 담겨 있는 우리의 전통, 과연 우리의 사회와 삶에 발전과 변화만이 좋은 것일까? 이를 위해 전통은 없어져도 되는가? 전통은 그 집단의 사회 풍습이나 전해 내려오는 관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의 뿌리가 뽑히면 아무리 잘 자라고 예쁘고 멋진 나무들도 쓰러지기 마련이다. 전통도 이런 것일거다.우리 사회의 엄청난 발전만 바라보다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 즉 우리의 전통을신경 쓰지 못하고 점점 잊어 가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에서 코르니유 영감은 제분 공장으로 방앗간과 풍차가 사라져갈 때 끝까지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이으려 한다.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발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안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코르니유 영감이 제분 공장에 대해 안 좋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몸 색을 바꾸는 동물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주변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가치관과 태도를 변화시키면서 이익을 챙기려 하는 사람을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번 글을 통해 전광용이 쓴 <꺼삐딴 리>의 ‘이인국’의 태도를 비판하려고 한다. 문화 평론가이자 교수인 김형중은 “이인국은 압도적으로 ‘카멜레온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라고 비판하였다. 기회주의자는 일관된 입장을 지니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1 이인국은 일제강점기 때는 친일파였고, 해방 이후 러시아군이 들어왔던 때에는 러시아 편에 서서 친일파로 처벌당할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자신의 색을 변화시키면서 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다양한 목표가 있겠지만 결국 맨 마지막은 행복이다. 이인국은 해방 이후 죽을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 흐름에 치이며 살려고 발버둥 쳤다. 진정으로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상황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였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모습을 하루에 한 번씩 성찰하고 반성하였다. 그리고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하루의 행동을 오늘 한 일이 무엇인지, 할 일을 빠뜨린 것은 없는지, 규칙에 어긋난 것은 없는지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되, 생각해 보지 않았으면 잠들지 말라.”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찰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이 강조하고 충고하는 것일까? 성찰이란 자신이 한 일, 말과 같은 자신의 행위 모든 것을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1나는 우리 삶을 도덕적 측면에서 몇 가지 덕목으로 나눈다면 그중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매일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잘못을 한다. 자신을 속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을 생각하고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도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은 절대로 고칠 수 없고 계속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때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성찰은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아는 것은 나의 장점은 무엇이며 단점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주변 어떤 일에, 혹은 어떤 것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나는 우리가 의미를 두는 것에 대한 기준이 우리라고 생각한다. 포도를 먹는 우리는 포도가 맛있는 것에 의미를 두지만,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은 돈에 의미를 두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의미도 비슷할 것이다. 각자 삶의 의미는 모두 다를 것이다. 오늘 나는 우리의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이 글을 읽기 바란다. 다들 한 번쯤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여행한 별들에는 왕,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자, 지리학자. 등 많은 사람이 나온다. 내가 갑자기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어린 왕자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책에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삶의 의미를 두고 있어서 내가 쓰려고 하는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의 삶의 의미는 ‘권력’이고 허영심 많은 사람은 ‘명예’ 사업가는 ‘돈’ 지리학자는 ‘지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과연 이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것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고
자아 정체감은 개인에 대한 개인의 느낌을 말한다. 그 감정을 좋게 나에 대해 자기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긍정적 자아 정체감이라고 정의하고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우린 때로 실수한다.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할 때도 있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좌절하고 슬퍼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심하면 우울증,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자아 정체감을 가져야 한다.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1단계. 나에게 관심을 가져라. 무엇보다 ‘나’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노트를 펼치고 나의 장점 100가지를 적어보아라. 아마 막힘없이 100개 이상을 써 내려가는 것은 힘들 것이다. 장점 100가지를 찾는 것은 어렵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우린 평소 자신한테 관심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나의 목표이고 이런 것을 모두 통틀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나는 그것이 긍정적 자아 정체감 형성을 위한 가장 첫 번째
‘세상이 완벽하지 않을 때, 세상이 친절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서로가 있다면 괜찮을 거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알렉 벤자민 (Alec Benjamin)의 ‘If we have each other’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노래도 좋지만 우린 여기서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행복으로만 가득 차고 기쁨이 넘쳐흐를 수만은 없다. 우린 때로 낙담하고 좌절한다. 가시 돋친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에 슬퍼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이 다 내 생각처럼 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때 우린 서로가 곁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자신이 사는 곳에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생각해 보아라.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 밖으로 나가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가? 만약 나간다고 하면 몸은 다 젖을 것이고, 춥고 가다가 물웅덩이를 마주할 수도 있다.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때 우산이 있으면 어떨까? 한결 수월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럴지 모른다. 인생이라는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떨 때는 ‘좌절’이라는 비바람이 불고 ‘슬픔’이라는 번개가 치기도 한다. 때로 ‘험한 말, 나쁜 일’과 같은 물웅덩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정치사상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세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도 행복은 궁극의 목적이었다.(인용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7908&cid=42140&categoryId=42140)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왜 사람마다 행복을 다르게 느낄까? 이런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이번 글에 담아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때는 없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물질 같은 것 때문도 아니고 주변 환경 탓도 아니다. 우리의 태도 때문이다. 우린 많은 것을 바란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좋은 것만을 바라보며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럼 행복을 느끼려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그 해답은 바로 ‘감사함’이다. 주변에 감사할 줄 알면 덩달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생활 속에는 감사해야 하는 것들이 수없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충분한 생활 안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고 그 익숙함에 감
일제 강점기에 한쪽 팔을 잃은 만도, 그리고 6.25 전쟁 때 한쪽 다리를 잃은 그의 아들 진수. 이 책은 [수난이대]라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친 수난에 관한 내용을 쓰며, 전쟁피해자들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우린 이 책에서전쟁피해자들의 고통을 통해,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삶의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전하기 위해 책에는 2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아까 말한 만도와 진수, 이 두 부자이다. 아들이 전쟁에서 돌아오는 날, 만도는 전에 있던 멀쩡한 아들이 아니라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을 만난다. 처음 진수는 못살 것 같다며 부정적인 절망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만도가 계속 위로와 희망의 말을 해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두 부자는 외나무다리를 만나게 된다. 두 인물이 어떻게 다리를 건널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때, 만도는 아들 진수를 업고, 진수는 아버지 손에 든 고등어를 들었다. 이렇게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에서 외나무다리는 무엇일까? 무엇을 의미할까? 얼핏 보면 별 의미 없는 다리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이 외나무다리를 전쟁으로 인한 장애를 입은 피해자들의 인생에 비추어
우리는 살면서 많은 도전을 한다. 그 도전 중에는 힘들고 어렵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느껴지는 도전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어렵고 힘든 도전을 한다. 왜일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가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이유를 ‘도리스레싱’이 지은 책 [터널을 지나]를 통해 말하려고 한다. 책의 주인공인 제리는 엄마와 함께 휴가를 왔다가 바다 밑 좁은 바위 터널을 건너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것을 본 제리는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지만, 바다 밑에 있는 터널을 통과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제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잠수 연습을 해 마음속 공포를 이겨내고 바다 밑에 있는 터널을 통과하였다. 이쯤에서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제리가 수많은 노력 끝에 바다 밑 터널을 통과하고 얻은 것을 과연 무엇일까?’ 바다 밑 터널을 통과하는 것, 그것을 통해 물질적으로 얻는 보상도 없었고, 누군가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아무도 터널을 통과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리의 노력은 다 헛수고였다는 말인가? 지금은 제리의 도전을 예로 들어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하는 어렵고 힘든 도전들은 겉으로 얼핏 보았을 때는 그 도전을 함으로써 아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