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물을 지을 때 창문에 쓰이는 창호지는 한지의 한 종류이다. 한지는 우리의 전통 종이로써다양한 우수성이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러한 한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인용] "세계 최고의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두루마리. 석가탑 사리함 안 비단보에 싸여 있던 그 두루마리의 지질은 닥종이였다. 1966년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것의 제작 연대는 704~751년. 자그마치 1200년 남짓을 좀벌레에 시달리면서도 두루마리 일부만 닳아 떨어졌을 뿐 그 형체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조히(종이), 조선종이, 창호지, 문종이, 참종이, 닥종이 따위로 불렸던 우리 종이가 ‘한지(韓紙)’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초 중반 서양 종이 ’양지(洋紙)’가 들어와 주류를 차지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적어도 16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종이들은 지금까지도 그 생생함을 잃지 않는 반면, 기계로 제작되는 현대 한지는 그 보존성 면에서 너무도 퇴보했다. 수입 닥나무, 지나친 표백분 사용 등이 그 이유다.한지는우리 민족상처럼 강인하고 부드러우며 깨끗할 뿐만 아니라 은은하고 정감이 있다. 또한 질감과 빛깔이 고와 책종이나 화구용으로 조상들
우리의 전통건축물 중 대표적 하나에는 서원이 있다. 서원은 조선 시대 지방 유학세력이 구심점이 되어 건립한 사립 중등교육 기관으로, 교육 시설 외에 선현들을 모신 사당을 설치해 학생들이 그 정신을 본받도록 한 곳이다. 내가 사는 고양시에도 여러 서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문봉동에 있는 문봉 서원이다. 문봉 서원은 1688년(숙종 14)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남효온(南孝溫)·김정국(金正國)·기준(奇遵)·정지운(鄭之雲)·민순(閔純)·홍이상(洪履祥)·이신의(李愼儀)·이유겸(李有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며 숙종 35년(1709) 사액(賜額임금이 현판을 내려 보냄)받은 고양시 첫 서원이었다. 이 팔현은 단순히 고양 땅과 연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원에 배향된 학자들이라기보다 이들의 인품과 업적이 조선조를 대표하던 선비로 손꼽히는 데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올곧은 선비의 모범으로서 귀감이 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문봉 서원은 고양 팔현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문화 계승 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되었으며 아직복원하지 못한 채 현재 문봉동에 1000여 평 규모의 흔적만 남아있다.
건축에는 수학이 필수적이다. 수학을 통해서 더욱 정확하고 아름답고 견고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건축은 단연 수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현대 건축물에 적용된 수학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문득 수학이 현재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우리의 오래된 전통건축물 속에서도 수학을 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해 보았다. 전통건축 속에서 발견한 수학은 여러 가지였지만 여기서는 3가지의 수학원리와 그 원리가 적용된 전통건축물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구고현의 정리를 볼 수 있다. 구고현의 정리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동양에서는 ‘구고현의 정리’라고 한다. 직각삼각형에서는 밑변이 ‘구’, 높이가 ‘고’, 빗변이 ‘현’이 된다. 중국의 수학책인 <주비산경>은 서양보다 500년이나 앞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한 장의 그림으로 증명했는데, 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한 수많은 증명 중 가장 간결하고 우아한 증명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불국사의 백운교에서 구고현의 정리를 볼 수 있다. 불국사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으로 올라가는 33개의 계단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를 백운교, 위를
한 번쯤은 학교 한문시간에 음양오행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음양오행이란 지난 5,000년 간 한민족의 원형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상적 원형으로 기본적으로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방위를 상징하는 사신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은 음양의 원리에 의해서 파생되고 그 각각은 다음과 같은 상징 색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은 왕궁의 조성이나 일반 건축 그리고 식생활과 의복에까지 우리의 생활 문화 전반에 넓게 퍼져있다. 조선의 건축물중 음양오행이 적용된 건축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대문과 보신각을 가장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흥인지문은 현재의 동대문으로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보물 제1호로 서울 4대문ㆍ4소문 중 유일하게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으로 쌓은 작은 성인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다. 다른 사대문과는 달리 흥인지문은 네 글자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는 동대문 일대가 서울 도성 안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바로 남쪽에 청계천이 흐르고 있으므로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고 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이곳은 조선의 최고 궁궐 경복궁의 위치이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했다.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다. 1990년부터는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현재 경복궁은 2011년부터 시작한 2차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1990년부터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