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Little Ambassador 한국전쟁 UN참전용사 감사편지쓰기 공모전(2018.03.19.-2018.04.27.)」 시상식이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30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품앗이운동본부에서 주최한 이번 공모전에서 이사장상(우수상)에 영문편지 작성으로 3차 실기까지 진출한 본교 쉐마기독학교의 박영진(중3), 최효정(중2), 장려상에 길예슬(중3), 이상환(중3), 고등부 장려상에 이혜원(고3), 그리고 지도 교사상까지 총 6명이 수상을 하였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서 소소한 편지를 작성하는 일을 통해서도 6.25 전쟁 당시도움을 주신 참전용사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느꼈고, 앞으로도 국제적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18 양주시 청소년 종합 예술제」가 6월 16일 (토) 경기 섬유종합 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청소년 예술제는 초, 중, 고등부로 나누어 진행하였으며 음악, 무용, 사물놀이, 문학 등 4개의 부문에서 총 9개 종목으로 약 290명의 청소년들이 노력과 여러 재능과 끼를 펼쳤다. 정성호 국회의원은 "우리 시대의 주인공인 청소년이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고, 이성호 양주시장은 "오늘은 청소년 여러분의 날"이며, "그간의 학업 스트레스는 잊고 가지고 있는 꿈과 끼를 마음껏 발휘해주길 바란다"고 축하인사를 전했다. 이 예술제는 해마다 열리는 전국적인 행사로서 본교 쉐마기독학교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학생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가하였다.
1월9일 오후1시부터6시까지 국랍중앙박물관에서 반크가 주최하는 글로벌 한국문화관광 외교대사17기 발대식 및 교육연수가 진행되었다.이번 발대식은 외국인에게 한국을 더 친근하게 알리고 평창동계올림픽도 함께 홍보하기 위해‘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외교대사’약500명을 선발하였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1999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국가홍보와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비정부 민간단체이다. 특히,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한국 방문의 해’로, 이 기간 동안 ‘코리아 그랜드 세일’, ‘코리아 투어 카드’, ‘핸즈 프리 서비스’, ‘온라인 할인쿠폰’ 등이 제공된다. 이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친절과 미소를 보여주는 ‘K스마일 캠페인’이 진행된다. K스마일 캠페인은 외국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활동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17기 외교대사는 대한민국을 알리는 홍보활동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미션이라는 두가지 미션이 진행된다. 한국방문위원회 고현주 강사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상호
이상화는 1901년 4월 5일에 경상북도 대구부 서문로 12번지에서 4형제 중 둘째로 출생하였다.이상화는 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4세까지 가정 사숙에서 큰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학하였다. 1915년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8년 경성중앙학교를 중퇴하고 강원도 금강산 일대를 방랑하였다.1919년 3ㆍ1운동 때에는 백기만 등과 함께 대구 학생봉기를 주도하였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여 한동안 은신하였다. 1921년 동료의 소개로 만나 백조에 참여하게 되어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2년 파리 유학을 목적으로 2년간 일본 동경의 아테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였다. 일본 유학 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칼럼과 글을 국내의 잡지사로 보냈다. 1923년 동경 대지진이 나자 불령선인으로 몰려 일본인 폭도들로부터 암살 위협을 겪었으나 어느 일본인의 배려로 귀국하였다.1925년 김기진 등과 함께 문학연구단체 파스큘라에 가담하였으며 그해 8월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33년 대구 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조선어와 영어, 작문을 담당하였다. 1937년 3월 만주에 있던 큰형을 만나러 중국에 3개월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윤동주의 아명은 '해환(海煥)'으로 해처럼 빛나라는 뜻이다.윤동주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북간도 명동촌은 일찍부터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마을로 북간도 최초의 신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이은 명동서숙으로 출발한 명동 학교가 있는 북간도 민족교육의 거점이다.윤동주의 아버지인 윤영석도 명동 학교 출신이며 중국 북경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에 교편을 잡았다. 1925년 윤동주는 만 8세의 나이로 수많은 민족 지사들을 배출한 명동 학교에 입학하였다. 명동 소학교 시절의 윤동주는 문학 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던 동기들과 함께 서울에서 발행되던 아이생활, 어린이 등의 잡지를 구독하며 문학 소년의 꿈을 키우다가 5학년 때인 1929년에 손수 원고를 모아 편집해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등사판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1938년 2월 광명 중학을 졸업한 윤동주는 고종사촌과 함께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에서 윤동주는 최현배 교수의 조선어 강의와 손진태 교수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재확인하였고 이양하 교수의 문학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해 나갔다. 연희전문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출생하였다.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쳤다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 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고 1896년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선사를 은사로 출사하여 승려가 되었다.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 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 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 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방대한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 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 본격적인 불교 잡지 ‘유심’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전국적이고 거족적인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불교계 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에게 간단한 식사를 부탁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으로 1904년 4월 4일 경복 안동에서 태어났다.영천에 있는 백학서원에서 학문을 연수했으나, 끊임없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여 1923년에 일본 동경에 있는 대학에 1년간 다니다가 이후 1925년에 귀국하였다.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와 일제 주요기관 등을 파괴하다가 대구형무소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윤세주의 의열투쟁에 이육사는 큰 감명을 받고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활발한 의열투쟁을 전개하던 중 1927년 10월 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일어나자 이육사는 형, 동생과 함께 일경에게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 송치되었다. 이때, 미결수 번호가 264번이었기 때문에 수감번호를 따서 호를 육사라 지었다. 이육사는 형, 동생과 함께 온갖 고문을 당하였으나 장진홍 의사가 붙잡히자 2년 4개월여간의 옥고를 끝으로 석방되었다. 1932년 6월 초 북경으로 가 루쉰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였으며, 후일 루쉰이 사망하자 조선일보에 추도문을 게재하고 그의 작품 [고향]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다. 이육사는 북경에서 본격적으로 무장 항일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1932년 10월 22일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