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훈의 사회 칼럼]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교육은 바뀌어야만 한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서로를 짓밟으며 더 높이 올라가 더 좋은 성취를 따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일까? 우리가 배우는 지금 이 교육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에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 체계이며 대학 입시 위주의 공부이다. 과연 수능을 잘 보는 게 똑똑해서 잘 보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교육체계는 '암기력 향상' 이 단어 하나만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자. 학교가 만들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학생들에게 지식과 교육을 알려주며 우리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입시 위주의 교육은 정작 사회에서 전혀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온갖 생식세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포물선 운동을 하는 공에 수직 항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물의 이온화 상수가 무엇인지, 우리나라에는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엘리뇨와 라니냐가 일어날 시 태평양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공부하다가 20살 성인이 되면 정작 필요한 것은 내가 거주할 집의 전, 월세 계약은 어떻게 하는지, 공과금은 어떻게 내야 하는지, 해외 입출국 시 필요한 서류는 무엇인지, 학생들이 정말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이지만 이런 것들은 전혀 알려주지 않으며 오직 입시를 위한 순위를 매기기 위해 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지식을 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능력과 그런 지식들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시대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견해는 고사하더라도 자신의 생각마저 비판적으로 사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며 오로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정답을 달달 외우고 있다. 대체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시험 답안지와 OMR카드에 작성하면 잊히는 지식이 교육의 목적일까.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그 역할을 상실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생들을 패배자로 만든다. 자기 성적을 만족하는 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교육의 형태는 학생의 자존감을 낮춘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사람이 가장 불행해지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학교와 학원 같은 온갖 교육체계는 매우 체계적으로 학생들의 우열을 가리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요한 시기에 하찮은 성적이라는 이유로 비교당하고, 인격을 상실당한다. 대학은 어디를 나왔고, 취직은 어디에 했는지와 같은 쓸모없는 잣대들은 우리를 비교하는 수단이며 어쩌면 학생들은 12년간 불행해지는 법을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에 나와보기도 전에 인생의 쓴맛부터 알아버린 학생들에게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며, 이는 대한민국의 청소년 자살률이 1위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모든 대학은 서열이 정해져 있다. 좋지 않은 대학을 나온다면 사회에 나오자마자 패배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오랜 기간 이런 교육의 세태는 지속되어 왔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80%는 자신들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전쟁터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40%, 일본은 10%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정책을 낸 사람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에 이런 사실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낸 정책들에 대한민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볼 뿐이다.

 

공부라는 것은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통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그저 부의 대물림을 보조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이다. 부유한 집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이 고조화 되었고 가난한 아이들을 공부를 잘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공정한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틀어진 경쟁을 그 누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녀교육을 잘 시킨다는 것은 부모가 열려있는 마음으로 자녀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떤 시대일지 그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그런 바뀌어가는 시대에서 내 자녀의 재능을 활용해서 자녀가 살아가는 앞으로의 미래세상에서 자녀를 위한 길을 터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그저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에 자녀에게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자녀에게 성적만을 강요하는 학부모 또한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100년 전 주요 운송수단은 마차였다, 그간 많은 발전을 거쳐 지금은 자동차와 비행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100년 전 컴퓨터는 매우 크고 작동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이라는 통신수단으로 언제 어디서든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학교의 모습을 보자. 100년과 지금의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다. 하물며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갈 가장 발전된 시설에서 공부해야 할 10대의 청소년들이 가장 구시대적인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는 곳일까? 아니면 과거를 준비하는 곳일까? 어쩌면 이런 척박한 교육환경 속에서 살아온 2030 세대들이 자신의 아이가 겪을 이런 현실을 보며 출산율이 그토록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교사 한 사람은 20명의 아이들 앞에 서있다. 아이들은 각자 서로 다른 장점과 다른 욕구, 다른 재능과 다른 꿈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 교육과정은 정책입안자들이 만든다. 그 사람들은 누구를 가르쳐본 경험이 전혀 없다. 그리고 표준화 시험 속에만 매달리며 그것으로 아이들의 순위를 메긴다. 표준화 시험을 개발한 프레드릭 켈리는 말한다, "이 시험들은 너무나 부실해서 페기 되어야 한다"라고. 하지만 개발자마저도 폐기해야 한다는 이 시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오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과거에만 안주하는 교육을 할 것인가.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학생들은 미래가 없이 공부하고 있다. 자신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오직 공부만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라.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학생들의 순위를 메기는 것도.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도. 학교는 학생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곳이다. 학생들이 서로를 밟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이런 교육의 세태는 계속될 것이다. 경쟁, 편견, 비교 모든 것이 문제이다. 핀란드와 같은 나라를 보자. 학교에서 머무는 기간은 짧고 교사들에 대한 처우도 괜찮은데 숙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경쟁보다는 협동에 초점을 맞춘다. 이 나라의 교육체제는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성취를 내고 있다. 싱가포르는 또 어떤가. 창조적인 학생을 기르기 위해 지금까지의 교육을 탈피해가며 변화하는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 비해 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떠한가. 겉으로는 매우 단단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매우 부실하다. 교육은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먼저 세상을 살아본 세대들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가는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들이다. 이런 교육을 지금처럼 하찮게 만드는 것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 글을 마치며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바뀌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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