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채린의 영화칼럼 5] <병구>민폐남의 등장




네이버 인디극장은 자주 찾아가는 편이다. 호평을 받았거나 유명한 독립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짧은 단편영화로 이루어진 온라인 시네마이기 때문에 시간이 남거나 할 때도 자주 찾아간다. 이번에 감상문을 쓰고자 하는 <병구>도 2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독립영화다. 영화는 대다수의 독립영화처럼 아무런 설명 없이 주인공의 통화로 시작한다. 통화라는 단서에서 찾을 수 있듯이 주인공 민지는 주변의 남자친구들에게 집안의 가구 옮기는 걸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


벌써 몇 명째 거절당하기를 여러 번, 한 친구가 문득 '병구'라는 이름을 민지에게 던진다. 민지는 친하지도 않은 병구를 부르기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병구를 부르기로 한다. 다음 씬에서, 민지를 찾아온 병구. 민지는 병구가 어서 가구나 옮기고 가버렸으면 하는 눈치지만 병구는 다르다. 민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퍽 반가워한다. 듣다못한 민지, 가구를 옮기자고 제안하지만 병구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민지의 눈에 거슬리는 일만 한다. 



병구가 하는 '거슬리는 일'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다. 병구가 끼치는 민폐에 병구가 저지르는 사고를 처리하는 민지의 반응, 그 중에서도 그녀의 표정이 정말 실감난다. 영화를 보다보면 "아니, 병구 쟤 왜 저래?" 하는 반응이 나온다. 그리고 어느새 민지와 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반응을 보인다. 병구가 하는 행동을 받아치는 민지의 반응. 별 다른 사건 없이도 그뿐만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영화의 평 중에서 '케미란 이런 것!' 이라는 평을 보고 공감했다. 


보통 케미라 하면 선남선녀가 만나 이루어내는 핑크빛의 보기 좋은 기류를 말하는 것인데, 선남도 아니고 선녀도 아닌 두 인물이 만나 이루어내는 좁은 방 안의 기류가 21분 동안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도 느껴진다. 내가 마치 먼지가 부유하는 4월 봄날의 방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병구가 끼치는 민폐 중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건 바로 여자 방의 콘돔을 손으로 들어 올리는 행동이었다. 여자와 남자 사이는 서로 다 알지만, 암묵적으로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인데 병구는 민지의 성생활을 간접적으로라도 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콘돔을 번쩍 들어 올린다. 민지의 인내심은 극에 달하고 그들 사이에는 침묵이 감돈다. 이 침묵 사이에 아마 많은 관객은 웃음을 참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관객은 병구를 민폐, 비호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건 나와 민지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집을 나서는 병구를 볼 때는 그래도 웃음이 날 것이다. 창문 밖으로 떠나가는 병구를 보던 민지가 그랬듯이 말이다. 멋있는 모습이라고는 단 1초도 보여주지 못한 병구지만 모두들 병구의 순진함과 진심을 마지막에는 깨달았을 거라고 민지의 웃음에서 확신할 수 있다.





칼럼 소개 :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 칼럼을 보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를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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