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채린의 영화칼럼 6] 무지개 같은 장례식 <미스터 후아유>

무지개 같은 장례식 <미스터 후아유>





장례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것들은 뻔하다. 슬픔, 우울, 검은색..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히 사람이 죽은 일을 추모하는 행사이니 침묵하고 슬퍼해야함이 당연하다. 어떻게든 죽은 사람의 삶을 좋게 포장하려 하고, 심한 경우 그의 삶을 왜곡하기도 한다. 즉 죽음으로 가는 길을 좋게 포장한다는 명목하에 진실되고 솔직한 그의 삶을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다. 갈수록 슬픔에 무뎌지고 모두가 그러하듯 죽음 이후에는 그의 진정한 삶 보다는 좋았던 모습만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미스터 후아유>의 장례식은 그렇지 않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방식을 세게 꼬집으려한다.


 


이 영화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이다. 유쾌함을 전하는 동시에 비극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장르로, 영화의 시작은 당연하게도 블랙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얼굴에 가득 담은 아들 다니엘의 표정은 진지하고 침울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잠시이다. 관 안에 담겨진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한 다니엘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아버지의 시신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신이 잘못 온 것이다. 관객은 여기서부터 웃음을 터뜨릴 것 이다.


무엇보다 엄숙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장례식에 시신이 바뀌어 온다는 상황부터가 그렇다. 간신히 상황을 정리한 다니엘과 그의 부인은 아버지의 장례를 앞에 두고 집 문제로 싸운다. 여기서 나는 장례라는 행사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겉치레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장면에서 나타나는 친척들도 장례식에 가는 일을 의례적이고 귀찮은 일이라고 여긴다.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 보다는 그들의 관계와 체면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낸다. 큰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는 내내 아빠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하는 '마사'도,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를 만날 기대로 찬 '저스틴'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중반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바쁘다. 비록 감독이 흥분제를 먹고 사고를 치는 '마사'의 남자친구와, 몸이 불편함을 핑계로 성질을 부리는 할아버지의 등장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장례식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교묘하게 감추어 놓았지만, 사람들이 입고 있는 검은 옷에 잠깐 주목해보면, 웃음 뒤에 감춰진 비극을 파악 할 수 있다. 비단 그들만을 욕할 것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도 그들과 같은 모습이다. 누군가 초상을 당했다 하면 예의상 봉투를 챙겨 장례식에 방문하고, 명복을 빌어준다. 하지만 장례식장을 나온 순간 죽은 사람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슬픔을 싹 잊어버린다.


 


장례식의 주인공인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영화가 꽤 진행된 후에야 등장한다. 바로 아버지의 남자친구의 등장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와의 사생활을 담은 사진을 빌미로 '다니엘'을 협박하여 돈을 요구한다. '다니엘'은 그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삶의 끝, 즉 장례식에서의 체면을 지켜주고자 말이다. 근본적으로 동성애를 아버지의 치부로 생각 할 '다니엘'을 예상하고 돈을 요구하는 '피터' 또한 잘못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를 쓰고 그를 숨기고자 하는 '다니엘' 또한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을 외면하고 있다.


아버지의 남자친구인 '피터'도 아버지의 삶의 일부이자, 아버지가 진심을 다해 사랑한 사람이지만 다니엘은 그를 숨기고자 한다. 이는 모든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모든 친인척을 불러서 엄숙하게 목사님의 기도 아래에서 치러져야할 장례에 아버지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어려워한다. 그들은 '피터'의 폭로를 막으려 별별 방법을 다 쓴다. 그를 묶어놓고, 약을 먹이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관 속에 함께 넣어 묻으려고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폭소를 한다. 그 과정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은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장례식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냉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국 다시 한번 코미디 뒤에 숨겨진 진짜 블랙을 알아야한다.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돌이켜보며 그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아버지와 자신들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가족들이 잘못 되었음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이다.


 


죽은 사람에 대한 체면과 예의는 중시되어야 하는게 맞다. 그러나 고작 명예를 위해 진실된 삶과 그가 추구했던 모든 가치들을 외면해야 하는걸까? 사람들은 <미스터 후아유> 속의 가족들과 다를 바가 없다. 죽음 앞에서도 명예를 중시하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창피할만한 죽은 사람의 지난 삶에 대한 일은 언급조차 하지않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이는 장례식의 끝부분에 다니엘의 추모사에서도 드러난다. 아버지가 게이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일부이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고 지난 삶을 돌이켜 보는 바른 자세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유쾌함 속에 감춰진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블랙 코미디의 정석과도 같은 결말이다.


사람들은 코미디에 빠져 실컷 웃다 블랙의 의미를 깨닫는다. 장례식이라는 소재를 칙칙하고 우울하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무지개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해서 우리에게 진정한 장례의 의미를 일깨워준 영화 <미스터 후아유>였다.




칼럼 소개 :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 칼럼을 보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를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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