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채린의 영화칼럼 7]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 누가 가르쳐주나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바람직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좋은 부모의 기준을 세우고, 그들을 평가한다. 다수의 육아 서적과 전문가들은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 주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이론적인 것만 논하지 실질적으로 좋은 부모의 예시를 보여주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그걸 배워야 하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 생겼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라는 영화를 보고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 료타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다. 높은 연봉과 아이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그는 자신을 좋은 아빠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료타의 그런 생각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 케이타와 아내 미도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케이타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억지로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미도리는 재정적인 지원만을 주는 료타의 육아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아들과 놀아주고 애정을 주는 시간이 부족한 료타는 그의 문제점을 모른다. 엘리트인 자신처럼 아이를 키우려 하고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질책한다. 그것이 료타의 육아 방식이고, 료타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역할이다.


그러나 무작정 그를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료타의 아버지 또한 그랬고, 그런 아버지에게 자란 료타도 그 방식을 그대로 케이타에게 적용하고 있다. 무엇이 옳다고도, 옳지 않다고도 정의할 수 없는 부모의 역할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 갈등이 두드러지는 건 아주 큰 사건 때문이다. 케이타를 낳은 병원에서 사실 아이가 바뀐 것 같다며 연락이 온 것이다. 료타와 미도리는 크게 충격을 받지만 바뀐 아이를 만나기로 한다. 아이를 만난 후, 친아들인 게 중요하다며 아이를 바꾸자는 료타와 그래도 키워온 정이 있는 아이인데 어떻게 바꾸냐는 미도리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료타의 육아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던 미도리는 그동안의 료타의 행동들을 비난하며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할 줄 모른다며 소리친다. 그 사이 아들 케이타는 친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료타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케이타가 느낀 부성애가 무엇인지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관객들은 느낄 수 있다. 분명 료타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료타는 케이타 대신 자신의 진짜 아들과 함께 지낸다. 그를 케이타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대하려 하지만, 친아들은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여기서 료타는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아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꿀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우면서 자랐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바뀐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의미를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료타는 케이타에게 사과하고자 한다. 자신이 잘못했던 것을 사죄하고, 친아들이 아닐지라도 케이타를 자기 아들로 받아들인다.

 


부모의 의미, 역할은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환기되고 고민되는 것들이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기가 딸에게 했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좋은 부모에 대한 정의는 없다. 그것은 누가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좋은 부모에 대한 정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관객에게 부모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나는 어떤 부모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칼럼 소개 :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 칼럼을 보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를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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