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이면서도 유쾌하고, 심오하면서도 미친 듯한 우주여행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구가 파괴되려는 순간 외계인 친구의 도움으로 우주선 히치하이킹에 성공하게 되지만, 여행하면서 돌고래가 인간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구를 총계획하고 설계한 자들이 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무한 불가능 확률 추진기가 딸린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하게 되는 그런 우주여행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불가능해 보이긴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란 한없이 제한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 영국의 한 볼품없는 집에 살고 있던 지극히 평범한 지구인 ‘아서 덴트’는 앞서 언급한 ‘환상적인 모험’을 반강제적으로 떠나게 된다. 지구가 파괴되기 12분 전, 지구인 아서 덴트와 그의 친구이자 베텔게우스 근처의 작은 행성에서 온 외계인 포드 프리펙트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서 덴트는 자기 집이 고속도로 건설에 의해 파괴될 것이라는 불만을 늘어놓는 반면, 포드는 이제 곧 지구가 파괴될 것이라는 말만 전한다. 아서가 자신의 집 상태를 확인하려고 일어선 지 정확히 12분 후, 지구는 초공간 고속도로를 만들려는 보고인들의 공병함대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다. 포드의 히치하이킹으로 둘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곳곳에 언젠가부터 무질서하게 세워진 전동킥보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쓰러져있어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횡단보도 경사면에 두고 가서 차도로 미끄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것도 보았다. 더 큰 문제는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들이 최근 몇 년간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몇 백 건씩 전동킥보드 관련 사고가 접수된 기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공원에서 제한 속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달리는 이용자들이나, 허술한 인증 시스템을 약점 삼아 나이제한을 어기거나 면허증 없이 전동킥보드를 불법 사용하는 이용자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집 근처 공원에 나가면 교복을 입고 전동킥보드를 타는 학생들의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고, 일인형 이동수단이지만 두 명이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놀이기구처럼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모르는지 안전모를 쓰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전동킥보드 문제에 대한 인식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동킥보드 제한속도에 관한 개선 방안이다. 도로교통법상 전동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대의 기술은 정말 많이 발전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먼 거리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전했고,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메우는 신도시들이 생겨났고, 자율주행 자동차나 인공지능 로봇 등 기술은 아직도 발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겨났고, 이를 통한 플랫폼들 또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시대의 변화와 함께 따라온 새로운 세계도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다. 가상 현실은 말 그대로 ‘컴퓨터 등을 사용해 만든, 실제와 유사한 가상의 환경 혹은 그 기술 자체’를 뜻한다. (참고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83%81_%ED%98%84%EC%8B%A4) 나는 가상 현실을 활용한 기술들이 현재 우리의 삶에 더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것을 현실처럼 재현해낼 순 없겠지만, 한층 높아진 몰입감은우리의 뇌가 현실을 보고 있다고 속이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가상의 공간에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필요한
살면서 방관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영어사전에서 방관자는 bystander로 번역된다. 옆으로 비껴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 같아흥미로웠다.그러다우연한 기회에「Book Thief」란 책을 읽고 2차 세계 대전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방관자 효과'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방관자 효과란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1즉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확률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외면한다는 것이 매정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방관자 효과’에 대해 잘 모른다면, 그를 도울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놀랍고 위험한 사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10월 24일 Richmond 고등학교에서 15세의 소녀가 약 10여명의 남성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있었다.2 사건 당시 소녀의 주변에 있던 사람 수는 자그마치 10명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도와주려고 나서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