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영화 칼럼]1등만 기억하는 세상, 4등은 설 자리도 없나요

2021.11.23 10:00:24

* 영화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가 무색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던 2020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뛰어난 선수들이 출전하여 6개의 금메달과 총 20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기쁨을 국민들에게 안겨주어 지친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20개의 메달 중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고 혹은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아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하게도, 금메달의 영광을 더 호사롭게 생각하고 '1등'만 기억하는 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여기, 평생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 '만년 4등'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온 무명의 어린 수영 선수가 있다. 영화 <4등> 에서 말이다. 

 

 

자라나는 유망주 수영 선수인 준호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바쁜 수영 훈련 일정을 보낸다. 여러 수영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었지만, 결과는 늘 4등. 아무리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등수에 준호와 엄마는 매일 속이 타들어 가기만 한다. 엄마는 어떻게든 준호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수영 코치를 알고 있다는 다른 엄마를 찾아가 코치의 정보를 알아낸다. 어렵게 만나게 된 코치는 엄마에게 훈련할 때 절대 수영장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준호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감수 할 수 있었다. 

 

첫 훈련 날, 코치는 준호를 수영장이 아닌 PC방으로 부른다. 준호는 의아했지만 오랜만에 즐기는 게임에 정신이 팔려 수영 훈련은 금세 잊어버리고 즐겁게 지낸다. 그리고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코치는 여전히 준호를 PC방으로 부르고 훈련이 아닌 게임을 함께 한다. 어느 날, 수영을 계속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한 준호는 코치에게 언제쯤 훈련을 시작하냐고 묻지만, 코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게임도 질려 다시 수영이 하고 싶어진 준호는 코치를 조르고 졸라 결국 수영장으로 가게 된다. 정식적인 수업이 시작되고, 코치는 준호를 강압적으로 훈련 시킨다. 심지어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폭력을 가차 없이 가하기도 한다.  준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성적을 기대하는 엄마를 위해 매일같이 생겨나는 멍을 보면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결국 엄마에게 몸에 든 멍 자국을 들키게 된 준호. 엄마는 코치가 폭력을 가하여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속상해하지만, 자식의 아픔보다도 좋은 성적이 우선순위였던 엄마는 훈련을 이어나가게 한다. 코치는 여전히 폭력을 동행한 훈련을 진행하고, 준호의 아빠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직접 코치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코치에게 돈을 건네며 아들을 체벌하면 수영에 발을 못 들이게 하겠다는 경고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적반하장의 태도인 코치. 사실 코치와 기자로 일하는 준호의 아빠는 이미 구면인 사이이다.

 

과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족족 세계신기록을 얻어낼 만큼 재능이 뛰어났던 수영 선수는 훈련을 힘들게 하지 않아도 쉽게 얻어내는 결과에 거만해져 훈련 시간에 수영장이 아닌 도박장에 나가게 된다. 어느 날, 선수의 코치는 계속해서 훈련에 빠지는 선수를 불러와 심한 체벌을 하게 되고, 부당한 체벌을 당한 선수는 언론사 기자에게 자신의 코치가 선수를 때리며 훈련한다는 기사를 내게 해달라는 연락을 취하지만, 돌아왔던 기자의 대답은 "맞을 만했으니까 맞았겠지."라며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현재, 선수를 은퇴하고 수영 코치를 하게 된 광수와 당시 수영코치의 체벌을 외면한 기자 영훈은 어린 선수의 코치와 그 선수의 아버지로 다시 만났다. 그러나, 영훈을 기억하는 광수와 달리 영훈은 광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 후로도 광수의 체벌 훈련은 계속되고, 아예 이런 말까지 덧붙인다.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을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다”

 

준호는 이제 이런 수영을 하고 싶지가 않아, 엄마에게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엄마는 달래듯 준호를 다시 설득해보려 했지만, 결국 화를 내고 만다. 

"네가 무슨 권리로 수영을 그만둬! 엄마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엄마는 준호의 1등이라면 무엇이든 할 기세로 새벽 훈련에도 따라다니며 준호만큼 바쁘게 준호를 케어했다. 그러나 엄마의 잘못된 사랑이 준호를 성적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준호는 수영을 그만두게 된다. 엄마의 관심은 이제 동생의 학업으로 쏠리고, 처음에는 마냥 관심을 받아 좋았던 동생도 엄마의 집착 강도가 심해지자 형이 다시 수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준호는 수영을 여전히 좋아했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기 위해 광수 코치를 찾아가지만, 그는 스스로 해보라며 그럼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준호는 정말로 매일같이 혼자 새벽 운동을 하고 훈련하며 수영대회를 준비한다. 온전히 혼자만의 싸움으로 준비했던 대회 당일, 준호는 당당하게 1등을 거미 쥐게 된다. 

 

<4등> 은 부조리한 체육계의 민낯과 현실을 드러내면서 존중받을 수 있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 수영 선수의 일대기 안에서 풀어낸다. 또한, 오로지 1등의 이름만을 기억하는 성적 지상주의의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준호의 아빠이자 부당한 현실을 밝혀주지 않았던 기자 영훈의 대사가 비수처럼 꽂히는 이유는 세상에 '맞을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체육계를 비롯해 여러 사회 구조 속에서 '폭력'이란 이름은 여전히 쉽게 지워지지 않는 꼬리표와 같다. 

 

때문에 준호 또한 수영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엄마의 끝없는 집착과 코치의 폭력 속에 점점 희망과 꿈을 짓밟혀 간다. 결국 그 어떤 이의 억압 없이 오로지 혼자만의 싸움으로 얻어낸 대회에서 최상의 결과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처럼 사회는 한 사람의 인권을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성장한다. 영화 속 준호의 멍과 4등이라는 꼬리표가 지워지는 순간에는 모두가 그토록 원했던 값진 '1등'의 결과를 안겨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 최상의 성적만을 좇는 것일까?  물론 어떠한 분야에서든 최상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부와 명예 등 얻게 되는 장점들이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득을 통해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맞는 것인지 우리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준호는 엄마와 코치의 감시가 없으며 레인조차 흐트러진 수영장에서 그 어떤 때보다 자유로운 수영을 즐긴다. 자신이 수영을 좋아한다는 것을 잊을 만큼 수영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준호였지만, 누구의 시선도 비치지 않는 곳에서 준호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수영을 해내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필자는 진정한 행복이란, 누군가의 조력이나 인위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가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에서 비로소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준호와 같이 현대의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짜 '꿈'을 잃어가며 오로지 학업과 대학만을 위해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간다. 결국 어떠한 노력도 노력이기에, 그들이 최상위의 학업능력을 거미 쥐게 되고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 게 될 수 있지만, 그들의 모든 날이 행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회의감 또한 존재할 것이다. 결국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리는 외적으로 성공한 삶보다, 실리적으로 얻게 되는 요소가 적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준호의 엄마는 '1등'이라는 최종 목표를 가지고 준호에게 '만년 4등', '꾸리꾸리한 삶' 등의 상처가 되는 말을 스스럼없이 행하며 준호의 꿈에 채찍질한다. 엄마는 준호가 얻어내는 높은 성적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식에게 모진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준호는 결국 엄마의 채찍 속에서는 절대 1위를 얻어내지 못한다.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원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느껴지는 행복과 성공의 의미. 당신은 어떠한 행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전건휘 기자 abcabc1221@naver.com
저작권자(c) 미디어 경청,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PC버전으로 보기
남부제작센터
경기도 군포시 오금로 15-35 흥진중 별관 1층
Tel 031-348-9847Fax 031-348-9868
북부제작센터
경기도 의정부시 호국로 1287 몽실학교 2층
Tel 031-830-8835 Fax 031-856-9473
운영시간
화~금 13시~20시 30분,
토~일 11시~18시 30분 (휴관: 공휴일, 월요일)

copyright(c) 2015 Gyeonggido Office of Education. All rights reserved